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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갈매기 / 천상병

by 혜강(惠江) 2020. 4. 4.

 

 

갈매기

   -천상병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천상병 시인의 초기작품으로 자신의 주관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매우 감상적인 작품으로서, 하늘과 지상을 자유롭게 오가는 갈매기에 의탁하여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다.

 한 마디로 매우 소박하고 감상적이다. 어려운 비유나 심원한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이미지에 쉽게 자신의 감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움이 갈매기를 구름이 되게 하고,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보내며 파도와 가슴이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렀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1연은 그리움이 갈매기를 구름이 되게 한다. 이때 화자의 그리움은 지상적 존재인 자신이 스스로를 초월하여 천상적 존재에 이르고자 하는 갈망이다. 시인의 그리움이 갈매기에 닿고,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함으로써 시인은 하늘이라는 무한공간을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지금 날개를 가지고 스스로 비상할 수 있는 갈매기에게 자신의 그리움을 투사하여 지상에서 천상으로 상승하게 하여 제한된 지상적 존재가 자유로운 천상적 존재로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상승하고자 하는 것은 한계상황 앞에서 초월을 꿈꾸는 실존의 몸짓이다.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다니 얼마나 빛나는 상상력인가.

 게다가 2~3연에서는 갈매기가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로 묻어 보내고라고 추상화한다. 시인은 갈매기가 구름이 되자 갈매기의 빛나는 가슴뿐만 아니라 푸른 바다의 파도까지도 구름을 따라 그리움의 표상인 먼 나라로 흘러가게 한다. 참 그럴싸한 발상이다.

 그러고 보니, 4~5연에서 이런 발상은 화자에게는 날아오르는 자랑이요, ‘아름다운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화자는 하늘과 바다라는 이원적 공간을 설정하여 시적 상황을 형상화하고, 공간과 바다의 푸른색과 구름의 흰색으로 대립하는 색채 이미지를 통해 시상을 아름답게 그려나갔다.

 이 시에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기꺼운 듯> <푸른 바다> <흰 날개> <빛나는 가슴> <먼 나라> <아름다운 마음> 등은 사물에 대한 시인의 감상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시어들이다. 이러한 절제되지 않은 감상의 노출은 천상병 시인에게서 흔히 보는 일이지만, 그런데도 그리움이 갈매기라는 새의 이미지에 투사되어 그의 탁월한 시적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작자 천상병(千祥炳, 1930~1993)

 시인. 일본 효고현 출생하여 마산에서 성장. 1952문예<강물>, <갈매기>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그는 주벽이나 괴이한 행동으로 우리 시사(詩史)에서 매우 이단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시인이라는 세속적 명예와 이익을 떨쳐 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시를 지킨, 진정한 의미의 순수시인이라 할 수 있다. 가난,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맑고 투명한 시 정신을 유지하면서 삶에 대한 무욕(無慾)과 무사심(無私心)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시집으로 (1971), 주막에서(1979),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 등이 있다. 이 중에 시집 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낸 유고 시집이다. 사연은 이렇다. 1967년 천상병은 이른바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간첩 혐의로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르며 모진 고문을 받고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그 후 고문의 후유증과 지나친 음주 생활에서 오는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서울 시립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행방을 찾지 못한 그의 친척들과 문우들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생각하고 1971년 유고 시집 발간한 것이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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