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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유방(乳房)의 장 / 장순하

by 혜강(惠江) 2020. 4. 1.

 

 

<사진 : 조각가 이일호의 작품>

 

 

 

유방(乳房)의 장

 

 

- 장순하

 

 

 

난 몰라,

모시 앞섶 풀이 세어 그렇지

 

백련 꽃봉오리

산딸기도 하나둘씩

 

상그레 웃음 벙그는

소리 없는 개가(凱歌)!

 

불길을 딛고 서서

옥으로 견딘 순결

 

모진 가뭄에도

촉촉이 이슬 맺어

 

요요(嫋嫋)히 시내 흐르는

내일에의 동산아!

 

 

                    - 이삭줍기(2001)

 

  

시어 풀이

 

상그레 : 눈과 입을 귀엽게 움직이며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는 모양.

개가(凱歌) : 1. 개선가,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부르는 노래. 2. 이기거나 큰 성과가 있을 때의 환성

요요(嫋嫋): 맵시가 있고 날씬하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전적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분이랄까요, 한 폭의 미인도를 어디 문갑 속에라도 감춰 뒀다 몰래 꺼내 보는 듯한. 시행을 따라갈수록 저절로 눈이 감기는, 오오 '소리 없는 개가!‘  

 

  '백련 꽃봉오리''산딸기'는 관능을 감싼 수줍음의 은유. 여미고 또 여며도 봉곳하니 드러나는 젖가슴을 어찌합니까. '난 몰라, 모시 앞섶 풀이 세어 그렇지'. 짐짓 둘러대지만, 입가엔 어느새 상그레 머금는 웃음. 부끄러움도 참 아름다운 부끄러움입니다.

 

 향기와 기품이 넘치는 여인의 매무새가 행간에 긴 여운을 이끕니다. 어떤 불길도 옥의 순결에 흠을 내지 못하거니와, 모성의 기운은 모진 가뭄에도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인의 몸속엔 늘 생명의 시내가 요요히 흐릅니다.

 

 금세라도 여인의 섬섬한 손길이 주렴을 걷고 나올 듯하군요. 갈매빛 산등성이가 마을을 에두른 한낮, 흙담 안팎에는 매미소리 지천입니다. 모시-백련-웃음--이슬-시내로 이어지는 심상의 흐름을 좇노라면 마음까지 희고 맑게 씻깁니다.

 

                                                   - 시조 시인 박기섭(매일신문, 2007-8-9)

 

 

작자 장순하(張諄河, 1928~ )

 

 

 시조시인. 전북 정읍 출생. 호 사봉(師峰). 1949새교육지에 <어머님전 상사리>를 발표하고, 1957년 제1회 개천절 경축 전국백일장 시조부 예선에서 <통일대한>으로 장원을 했으며, 현대문학의 초대로 <울타리> <허수아비> 등이 게재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시조 전문지 신조(新調)주간 역임.

 

 그는 전통적인 시조를 변형하는 실험에 주력하면서, 한때 모더니즘에서 유행했던 시각적(視覺的) 표현법을 시조에 도입하여 글자 모양과 글자의 위치와 배열의 변화 등을 실험하는 한편, 화화를 시조 안에 끼워 넣는 일까지도 시도하였다. 시집에 백색부(白色賦)(1968), 묵계(黙契(1974), 동창(東窓)이 밝았느냐(1985), 달빛과 사랑(1986), 서울 귀거래(1997), 이삭줍기(2001) 등이 있다.

 

 

 

<작성>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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