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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람이 풍경으로 태어나 / 정현종

by 혜강(惠江) 2020. 4. 3.

 

 

 

 

 

사람이 풍경으로 태어나

 

 

-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 시집 나는 별 아저씨(1978)

 

 

시어 풀이

 

이스트(yeast) : 빵을 부풀리는데 사용하는 재료

 

 

이해와 감상

 

 

 정현종의 두 번째 시집인 나는 별 아저씨(1978)에 발표된 이 시는 사람이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는 경험을 하는 순간에 전개한 사유의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주변환경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풍경은 어떠한 작위(作爲)나 인위(人爲)가 없는, 무위(無爲)처럼 보이는 대상이다. 이 시에서는 사람들과 그 주변 환경의 자연스러운 조화가 하나의 풍경으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화자는 사람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서 하나의 풍경을 인식하며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모두 312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평이한 어휘와 시적 진술을 반복과 열거를 통해 심오한 철학적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주변 환경에 녹아들어 있는 모습에서 한 폭의 동양화와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1연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에 사람이 자신의 욕망과 신념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자연 사물(풍경)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소개한다. 즉 시적 자아가 보기에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는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을 하는 등의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인 것이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라는 표현은 사람이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의미하며, ,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는 잡담으로 시간을 여유롭게 만듦을 의미한다.

 

 그리고 2연에서는 사람이 하나의 풍경으로 피어나는 것이 대상의 성격 때문인지, 주체의 심리적 작용인지를 묻는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라고 하면서 사람이 하나의 풍경으로 변할 때가 그 사람의 능동적 행위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타자의 주관적 해석인지를 묻고 있다. 화자는 그건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하며 결론을 유보하고 있지만, 이러한 진술은 대상으로서의 사람과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공동 작업임을 암시하고 있다. 풍경이란 대상이 풍경으로서 보일 수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풍경으로 볼 수 있는 관찰자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3연에서는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아집과 욕망에서 벗어나 주변과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임을 함축하고 있다. 이때의 행복이란 하나의 풍경으로 변한 대상으로서의 사람의 행복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풍경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행복이기도 할 것이다. 풍경이라는 말 속에는 주변과 잘 조화를 이룬 대상을 전제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풍경은 아름다운 것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또한 행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이 시는 자신의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연스런 자신의 본모습을 회복했을 때 풍경이 될 수 있다고 보고, 풍경이 된 사람은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고 그로 인해서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있기에 행복할 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러나 이 시가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닭일까? 그 단초를 따라가자면 이 시가 태어난 시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시가 쓰인 1970년대는 도시화·산업화로 일상적인 삶들이 자본의 힘 아래에서 찍어낸 듯한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이미 그려진 풍경화와 다름없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다. 단지, 제공된 것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문제의식 없이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이 한 명의 주체로 서서 인간성을 드러내는 존재라면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난다는 비유는 사람들의 일상적 모습은 하나의 사물과 같다는 점에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라는 역설적인 이 표현은 부정적인 시대를 상징을 통해 우회적으로 끄집어내고 것으로 볼 수 있다.  

 

 

작자 정현종(鄭玄宗, 1939 ~ ) 

 

 

 시인. 서울 출생. 1965현대문학에 박두진이 <독무>, 여름과 겨울의 노래등을 추천하여 문단에 등단했다. 초기에는 사물에 깃들어 있는 꿈과 인간의 근원적인 꿈의 관계를 탐구한 시를 발표하였고, 후기에는 구체적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다룬 시를 발표하였다.

 

 시집으로 사물의 꿈(1972), 나는 별 아저씨(1978),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82),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1991), 한 꽃송이(1992), 내 어깨 위의 호랑이(1995), 이슬(1996), 갈증이며 샘물인(1999), 견딜 수 없네(2003), 광휘의 속삭임(2008)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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