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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가을 운동회 / 이성교

by 혜강(惠江) 2020. 3. 30.

 

 

 

 

가을 운동회


 

- 이성교

 

 

 

둥둥 북소리에
만국기가 오르면
온 마을엔 인화(人花)가 핀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연신 터지는
출발 신호에
땅이 흔들린다.

 

차일 친 골목엔
자잘한 웃음이 퍼지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과일에
떡타령도 잊었다.

 

하루 종일 빈 집엔
석류가 입을 딱 벌리고
그 옆엔 황소가
누런 하품을 토하고 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온갖 산들이
모두 다 고개를 늘이면
바람은 어느 새 골목으로 왔다가
오색(五色) 테이프를 몰고 갔다.

 

 

           - 보리 팰 무렵(1974)


 

시어 풀이

 

차일 : 햇볕을 가리기 위해 치는 포장.

떡 타령 : 떡을 달라고 조르는 일

 

 

이해와 감상


 

 옛날 시골 마을의 운동회는 온 마을의 잔치였다. 이 시는 마을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활기차고 흥겨운 가을 운동회의 분위기를 간결하고 소박한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화자는 이제는 볼 수 없는 가을 운동회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고향과 유년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가을 운동회를 마을 전체의 행사로 확대하여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로 표현하고 있다.


 둥둥 북소리가 운동회의 신명난 분위기를 돋구고 만국기가 휘날리면 어린 학생들은 물론 온 마을 사람들의 흥은 고조된다. 놀이 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던 농촌에서 운동회는 학교에 국한되는 행사가 아니라 온 마을의 축제 행사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든 모습을 꽃에 비유하여 인화(人花)’로 표현했다.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개인이 아닌 집단의 승부를 가르는 만큼 관전과 응원의 열기 또한 운동회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2연과 6연에서 반복되는 응원 소리는 운동회 내내 끊이지 않는 배경음과도 같다. 그런 응원 속에 달리기의 출발 신호가 울리면 이 흔들릴 정도로 운동회의 분위기가 고조된다.

 

 한편, 운동회는 응원과 경기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가을볕을 가리는 차일속에서는 풍성하고 흥겨운 정경이 벌어진다. 차려온 과일이 풍성하여 흔히 먹기 어려웠던 떡 타령마저 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4연은 학교 운동장이 떠들썩한 반면 마을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하루 종일 빈집엔/ 석류가 딱 입을 벌리고/ 그 옆엔 황소가/ 누런 하품을 토하고 있다.‘ 5연은 잘 익어 붉은 속을 드러낸 석류를 입 벌린 것으로 묘사하여 하품하는 황소와 더불어 가을의 평화로움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이제 운동회도 막바지. 저녁 햇살에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는 시간이 다가오면 흥겨운 운동회도 막을 내린다. ’바람은 어느 새 골목으로 왔다가/ 오색(五色) 테이프를 몰고 갔다는 간결한 표현은 운동회가 마감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성교의 <가을 운동회>는 마을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활기차고 흥겹던 가을 운동회의 풍경을 마치 풍경화를 보는 듯 선명하게 보여준다.



작자 이성교 (李姓敎, 1932~ )


 

 강원도 삼척 출생. 1957년에 현대문학<윤회>, <혼사>, <노을>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그는 시 창작에 있어서 주제, 구성, 표현이 중요한데 표현에 있어서 더 섬세한 단어를 사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전통을 바탕으로 신앙시와 토속적인 시를 즐겨 썼으며, 특히 강원도의 서정을 담은 향토적인 향토성을 담은 작품이 많다

 

 그가 쓴 정통적인 시에는 <겨울바다>, <보리 필 무렵>, <눈온 날 저녁>, <남행길>, <강원도 바람>, <동해안>, <운두령을 넘으며> 등이 있다. 시집으로 산음가(山吟歌)(1965), 겨울바다(1971), 운두령을 넘으면(2001), 동해안 연가(2015), 영일만을 바라보며(2019) 외 다수. 시론집 현대시의 모색, 수필집 영혼의 닻외 논저 다수.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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