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 끝에
- 박재삼
막바지 뙤약볕 속
한창 매미 울음은
한여름 무더위를 그 절정까지 올려놓고는
이렇게 다시 조용할 수 있는가.
지금은 아무 기척도 없이
정적의 소리인 쟁쟁쟁
천자(天地)가 하는 별의별
희한한 그늘의 소리에
멍청히 빨려들게 하구나.
사랑도 어쩌면
그와 같은 것인가
소나기처럼 숨이 차게
정수리부터 목물로 들이붓더니
얼마 후에는
그것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맑은 구름만 눈이 부시게
하늘 위에 펼치기만 하노니.
- 출전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91)
별의별 : 보통과 다른 갖가지의.
희한한 : 매우 드물거나 신기한.
목물 : 팔다리를 뻗고 엎드린 사람의 허리 위에서부터 목까지를 물로 씻어 주는 일.
이 작품은 매미의 울음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화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 곧 사랑이 끝난 후의 고요함을 형상화하고 있다. 매미의 울음과 사랑의 유사성(類似性)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는 작품이다. 즉, 이 시에서 사랑을 떠나보낸 화자는 절정으로 치닫던 매미 소리가 그친 정적 속을 걷다가, 그 매미 울음소리를 통해 열정적이었다가 식어버리는 사랑의 속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있다.
한여름 내내 무섭게 울어 대다 이내 사라진 ‘매미 울음’을 통해 그렇게 맹렬히 찾아왔다가 이내 사라진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고 있다. 즉, ‘매미 울음’이라는 자연물의 특성에서 인간의 ‘사랑’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있다. 다양한 감각적 심상과 비유적 표현을 활용하여 대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때로 역설법을 사용하여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한여름 무더위를 절정으로 올려놓고는 이내 사라진 매미 울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매미 울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정적’이라는 고요함이 남는다. ‘정적의 소리인 듯 쟁쟁쟁’은 정적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희한한 그늘의 소리에 멍청이 빨려들게 하구나’라는 시구는 공감각적 심상으로 매미 울음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을 실감 나게 표현한 것이다.
화자는 이러한 자연의 이치가 인간의 사랑과도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매미 울음소리는 한여름 무더위를 절정으로 올려놓고서는 맹렬히 울다가 곧 사라지는데, 사랑 또한 한여름 소나기처럼 숨차게 다가와 몸과 마음을 적셔 놓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사라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화자는 매미 울음이라는 자연 현상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사랑의 순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내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시의 화자는 ‘매미 울음’을 통해 사랑의 순리를 깨닫고 있다.
한여름에 맹렬히 들리던 ‘매미 울음’도 여름이 지나면 사라져 정적만 남듯이, ‘사랑’도 세월이 흐르면 뜨거웠던 열정은 식고,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화자는 정열적인 사랑이 끝난 후의 고요함을 하늘 위에 펼쳐진 ‘맑은 구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화자는 사랑이 떠나간 자리를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판단하지 않는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 대해서는 독자가 생각해 볼 일이다.
▲작자 박재삼(朴在森, 1933~1997)
시인. 일본 동경 출생. 1953년 《문예》에 <강물에서>가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한(恨)이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를 어학적, 예술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삶과 내재적인 아름다움을 구체화한 완전한 세계의 상징이다. 시집으로 《춘향이 마음》(1962), 《햇빛 속에서》(1970),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87) 등 다수.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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