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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겨울나무를 보며 / 박재삼

by 혜강(惠江) 2020. 3. 25.

 

 

 

 

겨울나무를 보며


 

- 박재삼

 

 

스물 안팎 때는

먼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 잡는 그리움에 살았다.

숨 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이제 마흔 가까운

손등이 앙상한 때는

나무들도 전부

겨울나무 그것이 되어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 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 버렸다.

 

비로소 나는 탕에 들어앉아

그것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음을

부우연 노을 속 한 경치로써

조금씩 확인할 따름이다.



시어 풀이

 

산발(散髮) : 머리를 풀어 헤침. 또는 그 머리.

() : 목욕탕이나 온천 등의 목욕하는 곳.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뇌하던 젊은 시절과 중년의 삶을 나무라는 자연물에 대응시켜 노래하고 있는 서정시이다. 즉 화자인 는 탕에 들어가 앉아 여름 나무와 겨울나무를 젊은 시절과 중년에 대응시키면서 겨울나무를 통해 거짓 없는 자아의 발견에서 오는 기쁨과 순수하고 참된 삶에 대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3연으로 된 이 시는 시간의 추이에 따라 화자의 정서적 추이를 병치시키고 있으며, 인간의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자기 생각을 차분하고 잔잔한 고백적 어조로 드러내고 있다.

 

 1연은 여름나무를 통하여 젊은 시절의 열정과 방황을, 2연은 겨울나무를 통하여 중년이 되어 허울을 벗고 자신의 참모습을 인식하고 있음을, 3연은 주제연으로 참모습의 인식에서 오는 홀가분한 심정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스물 안팎의 젊은 시절 질풍노도와 같이 숨 가쁘게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 잡는’ ‘숨가쁜 나무로 묘사했으며, 마흔 가까운 중년의 중후한 자신의 모습을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 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버렸다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겨울나무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인식하게 된 화자는 이제야 비로소 목욕탕에 들어앉아 겨울나무, 즉 자기 자신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여기서 은 옷을 모두 벗어버리는 곳으로 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을 벗어버리는 곳이다. 따라서 화자 자신의 삶의 모습을 깨닫게 해 주는 공간이며, ‘그것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음을의 표현은 자기의 참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한 데서 오는 기쁨을 드러낸다.


 이 시는 자연물에 화자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숨가쁜 나무겨울나무로 대비시키고, 상징과 의인, 영탄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거짓 없는 자아발견에서 오는 기쁨을 잘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 되었다.

 

 

작자 박재삼(朴在森, 1933~1997)

 

 

 1933 4 10일 일본 도쿄에서 출생. 경남 삼천포에서 성장, 고려대 국문과 중퇴. 1953년 시 <강물에서> 문예에 추천되고, 1955 현대문학에 시 <정적>과 시조 <섭리>가 추천되었다.

 

 그의 시세계는 <춘향이 마음>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등으로 대표되는데, 그는 이런 시들을 통해 소박한 일상생활과 자연을 애련하면서도 섬세한 가락으로 노래함으로써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하였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의 세계이다. 특히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어체의 어조와 잘 조율된 율격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그의 시 세계는 고전적인 정서의 세계와 향토적인 감각으로 일찍부터 전통시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2년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간행한 이래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내 사랑은(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1987), 박재삼 시집(1987), 사랑이여(1987),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89) 등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을 간행하였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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