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네니버블로그 '방아 찧는 토끼'>
흥부 부부상(夫婦像)
- 박재삼
흥부 부부가 박덩이를 사이하고
가르기 전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금이 문제리,
황금 벼 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내고
손발 닳은 처지끼리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 면(面)들아.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었으니.
그러다 금시
절로 면에 온 구슬까지를 서로 부끄리며
먼 물살이 가다가 소스라쳐 반짝이듯
서로 소스라쳐
본 웃음 물살을 지었다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확실히 문제다.
- 출전 《춘향이 마음》(1962)
◎시어 풀이
정갈하던 : 모양이나 옷 따위가 깨끗하고 말쑥하던.
부끄리며 : 부끄러워하며.
이 작품은 고전 소설 <흥부전>을 모티프로 하여 가난한 삶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랑으로써 가난을 이겨 내는 서민들의 애환을 따뜻한 시선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박덩이를 가르기 존에 웃고 있는 흥부 부부를 떠올리며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흥부 부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흥부 부부의 웃음을 욕심이 없는 읏음, 가난 속에서도 서로 위로하던 웃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대화체 형식을 사용한 이 시는 1연에서 욕심이 없는 흥부 부부의 웃음살을 통해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 사는 흥부 부부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물질적 가치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금이 문제리/ 황금 벼 이식이 문제리’로 표현한 뒤, 가난하지만 만족할 줄 아는 마음씨가 소중한 것임을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2연에서 화자는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면서 살아온 흥부 부부가 그려진다. 이들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내고’라는 표현 속에 담겨 있다. 가난으로 어렵고 고달픈 처지이면서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로 보여 ‘같이 웃어 비추던 겨울 면들’로 비유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연에서는 흥부 부부가 가난한 생활에서 오는 한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사랑으로 극복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흥부 부부는 서로를 위로하며 웃다가도 가난으로 인한 고통으로 서로 울었을 것을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었으리’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의 ‘구슬’은 서로에 대한 연민과 위로 흘린 눈물이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얼굴에 흘린 눈물까지도 서로 부끄러워 깜짝 놀라 ‘본(本) 웃음 물살을 지었다고’ 한다. 여기서 ‘본(本) 웃음’은 사랑으로 눈물을 극복한 후의 진정한 웃음이다. ‘울음’이 ‘웃음’으로 바뀐 것은‘한’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극복한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1연과 같은 구조로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라는 단정적인 어조로 가난한 처지를 사랑으로 극복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시는 대립적 시어의 상징적 의미의 시어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웃음’과 ‘금, 황금 벼 이삭’은 대립적 관계에 있는 시어이다. ‘금’과 ‘황금 벼 이삭’은 물질적인 풍요를 가리키고, ‘웃음’은 물질적 빈곤함을 이겨 나가는 힘을 가리킨다. ‘금, 황금 벼 이삭’과 같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하고 가난한 삶을 살지만, 금이나 누렇게 익은 벼 이삭보다 그저 박덩이가 좋아서 웃음을 짓는 흥부 부부의 모습을 통해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부부 사이의 사랑과 신뢰, 정신적인 행복이 더 중요함을 드러낸다.
결국, 고전 소설에서 제재를 끌어 온 이 시는 단순히 소박한 생활에 만족하며 욕심 없이 사는 차원이 아니라 가난한 삶으로 인한 한(恨)까지도 진정한 웃음, 진정한 사랑으로 극복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물질적 가치에 얽매여 사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작자 박재삼(朴在森, 1933~1997)
1933년 4월 10일 일본 도쿄에서 출생. 경남 삼천포에서 성장, 고려대 국문과 중퇴. 1953년 시 <강물에서>가 《문예》에 추천되고,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정적>과 시조 <섭리>가 추천되었다.
그의 시세계는 <춘향이 마음>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등으로 대표되는데, 그는 이런 시들을 통해 소박한 일상생활과 자연을 애련하면서도 섬세한 가락으로 노래함으로써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하였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의 세계이다. 특히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어체의 어조와 잘 조율된 율격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그의 시 세계는 고전적인 정서의 세계와 향토적인 감각으로 일찍부터 전통시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2년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간행한 이래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내 사랑은》(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1987), 《박재삼 시집》(1987), 《사랑이여》(1987),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89) 등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을 간행하였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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