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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수정가(水晶歌) / 박재삼

by 혜강(惠江) 2020. 3. 24.

 

 

 

 

수정가(水晶歌)


 

- 박 재 삼

 

 

집을 치면, 정화수(井華水)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 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순순(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 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 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 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水晶) 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 출전 춘향이 마음(1962)

 

 

시어 풀이

 

*정화수(井華水) :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 가족들의 평안을 빌면서 정성을 들이거나 약을 달이는 데 쓴다.

*었을레 : 었을까, ‘ㄹ례는 추측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겠더라에서 ‘--’의 의미가 약해진 것으로서 주로 옛 말투의 시문에서 쓰인다.

*갈앉은 : 가라앉은

*창창한 : ‘창창(滄滄)하다의 관형사형, 매우 찬, 매우 푸른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고전소설 <춘향전>을 소재로, 이몽룡에 대한 순수하고 애틋한 마음을 그리움과 한()의 정서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이몽룡에 대한 춘향의 사랑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함을 드러낸다. 화자는 이 시에서 춘향의 마음을 의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으며, 떠난 임을 그리워하며, 임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예스런 종결어미 ‘~었을레’, ‘~ㄹ까나의 반복을 통해 고전적인 미의식(美意識)을 보여주고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구분 없이 시상을 전개한 이 시는 모두 두 연으로 이루어졌다. 1연은 임에 대한 춘향의 말고 순수한 사랑을, 2연에서는 임에 대한 춘향의 간절한 기다림과 한()을 표현하고 있다.

 

 우선 1연은 임에 대한 춘향의 맑고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먼저 화자는 춘향을 집으로 치자면, ‘물방을의 선선한 우물집이라고 한다. 임에 대한 춘향의 그리움을 노골적으로 들어내기보다는, 맑고 순수한 정화수의 이미지에 빗대어 물방울로 상징하였다. 그것은 춘향의 그리움을 해맑은 이미지로 표현함으로써 이 도령을 향한 춘향의 사랑이 지순함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임은 바람같이 사라졌지만, 임과의 재회를 기다리며 순순(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으로 수용하겠다고 한다. 그 얼마나 맑고 순수한 사랑인가?

 

 2연에서 춘향은 적극성을 띤다. 하루에도 몇 번씩 푸른 산언덕에 올라 임을 기다린다. 그러나 임은 오지 않고 푸른 그리움만 짙게 밀려온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만 어릴 뿐이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환기하는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있다. 임이 돌아오기를 산신령에게 빌어도 보지만 임은 오지 않고, 기다리다 지친 춘향의 흐느낌만 언덕 위에 흩어진다. 수정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바람과 어울린 모습으로 산과 언덕들의 만리(萬里)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이 시는 시어 선택의 세심한 배려와 종결 어미의 반복적인 배치, 유기적으로 결합된 이미지 등으로 몽룡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스스로 절제하려고 하는 춘향이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의 춘향은 단지 시인이 재창조한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느끼고 있는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공감대가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작자 박재삼(朴在森, 1933~1997)

 

 

 1933년 4월 10일 일본 도쿄에서 출생경남 삼천포에서 성장고려대 국문과 중퇴. 1953년 시 <강물에서>가 문예에 추천되고,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정적>과 시조 <섭리>가 추천되었다.

 

 그의 시세계는 <춘향이 마음>과 <울음이 타는 가을 강등으로 대표되는데그는 이런 시들을 통해 소박한 일상생활과 자연을 애련하면서도 섬세한 가락으로 노래함으로써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하였다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의 세계이다특히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독특한 구어체의 어조와 잘 조율된 율격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전반적으로 그의 시 세계는 고전적인 정서의 세계와 향토적인 감각으로 일찍부터 전통시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2년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간행한 이래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내 사랑은(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1987), 박재삼 시집(1987), 사랑이여(1987),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89) 등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을 간행하였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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