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고향 소식 / 박재삼

by 혜강(惠江) 2020. 3. 25.

 

 

 

고향 소식


 

 - 박재삼

 

 

 

, 그래,

건재약(乾材藥) 냄새 유달리 구수하고 그윽하던

한냇가 대실 약방‥‥‥ 알다 뿐인가

수염 곱게 기르고 풍채 좋던

그 노인께서 세상을 떠났다고?

아니, 그게 벌써 여러 해 됐다고?

 

그리고 조금 내려와서

팔포(八浦) 웃동네 모퉁이

혼자 늙으며 술장사하던

사량(蛇梁)섬 창권(昌權)이 고모,

노상 동백기름을 바르던

, 그분 말이라, 바람같이 떴다고?

 

하기야 사람 소식이야 들어 무얼 하나,

끝내는 흐르고 가고 하게 마련인 것을……

그러나 가령 둔덕에 오르면

햇빛과 바람 속에서 군데 군데 대밭이

아직도 그전처럼 시원스레 빛나며 흔들리고 있다든지

못물이 먼 데서 그렇다든지

혹은 섬들이 졸면서 떠 있다든지

요컨대 그런 일들이 그저

내 일같이 반갑고 고맙고 할 따름이라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향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듣고, 죽음이 지닌 허무함과 고향의 변함없는 자연을 통해 느끼는 위안을 대화체 형식을 사용하여 노래한 서정시이다.


 과거 회상을 통하여 대상을 환기하고 있는 이 시는 고향의 인물, 자연, 사는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등장시켜 고향에 대한 정감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대상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한편 인간사와 자연을 대비시켜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죽음을 다루면서도 일상적 대화 형식을 끌어들임으로써 시인이 던지는 관념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나아가도록 시상을 이끌고 있다. 1연과 2연은 고향 소식을 알려 주는 이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지만, 화자의 말을 통해 고향의 수염을 곱게 기르고 풍채 좋던 노인사량섬 창권이 고모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엿들을 수 있는데, 여러 번 되묻는 데에서 죽음을 접한 화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느낄 수 있다. ‘바람같이 떴다고?’는 영원할 수 없는 인간사의 무상함을 함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화자는 이런 부고(訃告)를 접하고도 끝내 흐르고 가고 하게 마련이라며 죽음을 담담하고, 초연하게 받아들인다. 다소 체념 섞인 말투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러나에서 시상이 바뀐다. 허무감에 젖어 있던 화자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화자는 죽음에 굴복하여 허무와 무기력에 빠지는 대신에 그리운 고향을 떠올린다. 고향의 대밭’, ‘못물’, ‘섬들은 인간과는 달리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화자는 고향의 자연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요컨대 그런 일은 고향에 있는 자연과 관련된 소식인데, ‘내 일같이 반갑고 고맙고 할 따름이라네라는 표현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허무를 자연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화자는 가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소식이 전해질 때 놀라기도 하지만, 화자는 변하지 않는 고향의 정경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대발’, ‘못물’, ‘등과 같은 것들이 햇빛과 바람 속에서 시원스레 빛나며 흔들리고있다든지, 혹은 졸면서 떠 있다든지‘ ’아직도 그전처럼변함없이 건재하고 있다. 이것은 화자에게 있어서 고향은 무변성(無變性), 무시간성을 내재하고 있는 근원적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의 세계이다. 시인은 자연에 의지하여 위로와 지혜를 얻지만, 때로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과의 거리 때문에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노래하고 있는 삶의 비애는 삶 자체에 대한 부정이나 절망 등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근원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유사한 통사구조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형성함은 물론 영탄법과 의문형을 통해 화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고, 대화를 나누는 듯한 어투로 시상을 전개하여 친근감을 주고 있다.

 

 

작자 박재삼(朴在森, 1933~1997)


 

 1933410일 일본 도쿄에서 출생. 경남 삼천포에서 성장, 고려대 국문과 중퇴. 1953년 시 <강물에서>문예에 추천되고, 1955현대문학에 시 <정적>과 시조 <섭리>가 추천되었다.


 그의 시세계는 <춘향이 마음><울음이 타는 가을 강> 등으로 대표되는데, 그는 이런 시들을 통해 소박한 일상생활과 자연을 애련하면서도 섬세한 가락으로 노래함으로써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현하였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의 세계이다. 특히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어체의 어조와 잘 조율된 율격은 그의 시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그의 시 세계는 고전적인 정서의 세계와 향토적인 감각으로 일찍부터 전통시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2년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간행한 이래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내 사랑은(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1987), 박재삼 시집(1987), 사랑이여(1987),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89) 등 다수의 시집과 시선집을 간행하였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恨) / 박재삼  (0) 2020.03.25
매미 울음 끝에 / 박재삼  (0) 2020.03.25
겨울나무를 보며 / 박재삼  (0) 2020.03.25
수정가(水晶歌) / 박재삼  (0) 2020.03.24
흥부 부부상(夫婦像) / 박재삼  (0) 2020.03.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