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밖
- 박용래
머리가 마늘쪽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
한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
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 있다.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 듯 길들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천연(天然)히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잔광(殘光)이 눈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 시집 《강아지풀》(1975)
<시어 풀이>
천연(天然)히 : 생긴 그대로 조금도 꾸밈이 없이.
잔광(殘光) : 해가 질 무렵의 약한 햇빛.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향 마을의 ‘울타리 밖’ 정경을 통해 ‘울타리’ 안은 물론 ‘울타리 밖’에도 자연과 인간이 조화(調和)를 이루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시 역시 박용래 시인의 시 세계를 잘 반영한 작품이다. 그는 50년대 후반의 시적 경향을 보여준다. 즉, 모더니즘 기법에 전통과 자연에 관한 관심을 결합했다. 그는 사라져 가는 재래의 것들을 회화적 이미지로 복원하여 토속적 정취를 환기하고 소박한 자연의 이미지를 병치(倂置)하여 자연의 지속성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시도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시인이 그려내는 그림은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소년과 소녀가 걷는 사랑스러운 들길이 그렇고, ‘울타리 밖’에 ‘화초를 심는 마을’과 ‘별이 드는 마을’이 그렇다. 우리가 오래도록 어울려 함께 살 터전이다. 그 터전, 고향마을의 정경을 박용래 시인은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정겹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려내는 수법은 동일한 종결어미와 시어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1연에서 그려내는 고향의 들길은 사랑스러운 들길이다. 머리 탄 모양이 마늘족 같은 소녀와 한여름 알몸으로 사는 소녀는 순박한 아이들이다. 그들이 낯이 좀 설다 한들 무슨 대수랴? 이처럼 시인은 고향을 애정 깃든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2연에서 그려내는 고향의 자연스러운 정경은 3연으로 독립된 하나의 부사 ‘천연(天然)히’에 집약되고 있다. 이 단어는 조금도 꾸밈이 없는 고향의 정경을 표현한 것이지만, 마지막 연과 연결되어 4연을 더욱 빛나게 한다. 즉 울타리 밖 마을은 ‘화초를 심는 마을’이며, 잔광이 부신 마을‘이며, ’밤이면 더 많은 별이 뜨는 마을’이다.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된 이 마을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며, 자연과 함께 하는 마을이며, 동시에 시인이 지향하는 공간이다.
시인이 꿈꾸는 세상은 소박하다. 시인은 울타리 ‘안’에만 화초를 심는 세상을 원치 않는다. 자신의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세상이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거나 남의 칭찬이나 받으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제비가 날 듯 길 따라 물이 흐르듯 ‘천연히’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세상을 소망했다. ‘울타리 밖’은 내 고향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밖’에 있는 이웃과 나라, 지구 모두를 끌어안고 싶었다.
▲작자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충남 논산 출생, 1950년대부터 활동한 대표적인 순수시인이다. 그의 문학 활동은 향토 문인들과 ‘동백시인회(柊柏詩人會)’를 조직하여 동인지 《동백(柊柏)》을 간행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55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로, 이듬해 <황토길>, <땅>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싸락눈》(1969), 《강아지풀》, 《백발(百髮)의 꽃대궁》, 유고시집 《먼 바다》(1984)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우리 물빛 사랑이 풀꽃으로 피어나면》(1985)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전원적·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심화, 확대한 것이 특징이며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여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저녁눈>은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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