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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저녁 눈>과 <겨울밤> / 박용래

by 혜강(惠江) 2020. 3. 22.

 

 

 

 

A. 저녁 눈

 

-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 만 다니며 붐비다

 

*말집 : 추녀가 사방으로 뺑 돌아가게 만든 집.

 

    

B.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월간문학(1966)

 

 

이해와 감상

 

 위의 두 작품은 모두 박용래의 작품으로, 전원적·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여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는 그의 시 세계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또 이 두 작품은 고유어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모두 축약과 반복으로, 단순하지만 정감 있는 시어를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축약을 통해서는 의미의 울림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반복을 통한 단조로운 진술을 통해 옛것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A. <저녁 눈>

 

 이 시는 눈 내리는 주막집 마굿간의 풍경에서 변두리 빈터의 풍경으로 시선을 옮겨가는 원근법(근경원경)의 전개 방식으로, '말집 호롱불', '조랑말 발굽', '여물 써는 소리', '변두리 빈터' 등의 일상적 풍경을 응시하며, 나그네의 애상적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4행으로 된 이시는 시인이 보여 주는 4개의 풍경 외에는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 붐비다4회 반복되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만큼 축약과 반복을 통하여 시상을 단순화하였다.


  문장 서두에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유랑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저녁 눈'은 물질적 현상으로 언젠가는 없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이다. 그와 함께 위에서 제시한 네 가지 사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 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제 그것들 위로 '붐비듯이' 늦은 저녁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 문명의 거센 물결에 밀려 머지않아 사라져 버릴 것이다. 토속적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눈발'로 환치되어 '붐비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마지막 행의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디에서 변두리 빈터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눈발은 그런한 공간만을 찾아다니며 붐빈다. 겨울날 변두리 공터를 포근하게 감싸며 내리는 하얀 눈발처럼 소외된 곳으로 내몰린 이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려는 시인의 의도를 알 수 있다.

 

B. <겨울 밤>

 

 이 시는 시인이 눈 내리는 겨울밤에 고향집의 풍경을 떠올리며 고향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단 4행에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 ‘달빛’, ‘바람등을 통해 고향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것들은 고향의 정경을 드러내는 소재들이다. 시인은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고향 집의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시 역시,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으로 시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으며,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1~2행에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그리운 고향의 모습에서 먼저 떠올린 것이 마늘 밭에 눈이 쌓이는 모습이며, 그 다음은 추녀 밑에 내려 쌓이는 달빛이다. 그런데 그 고향은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이다. 여기서 고향먼 마을, 그것도 발목을 벗고 물을 거너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게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에서 표현된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단 넉 줄의 간명한 서술은 시적 결제의 진면목을 보여 준. 그뿐 아니라, 말과 말의 간격, 강약, 장단, 고저, 각도를 다스리는 저 정밀함과 민감한 감각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여 압축의 묘미를 보여 주는 전범(典範)을 보는 듯하다.

 

 

작자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충남 논산 출생, 1950년대부터 활동한 대표적인 순수시인이다. 그의 문학 활동은 향토 문인들과 동백시인회(柊柏詩人會)’를 조직하여 동인지 동백(柊柏)을 간행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55 현대문학 <가을의 노래>, 이듬해 <황토길>, <>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싸락눈(1969), 강아지풀, 백발(百髮)의 꽃대궁, 유고시집 먼 바다(1984)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우리 물빛 사랑이 풀꽃으로 피어나면(1985)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전원적·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심화, 확대한 것이 특징이며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여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저녁눈>은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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