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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나비와 철조망 / 박봉우

by 혜강(惠江) 2020. 3. 21.

 

 

<출처 : 다음카페 '코리안버터플라이'>

 

 

 

나비와 철조망

 

 

- 박봉우

 

 


  지금 저기 보이는 시푸런 강과 또 산을 넘어야 진종일은 별일없이 보낸 것이 된다. 서녘 하늘은 장미빛 무늬로 타는 큰 눈의 창을 열어지친 날개를 바라보며 서로 가슴 타는 그러한 거리(距離)에 숨이 흐르고


  모진 바람이 분다. 그런 속에서 피비린내 나게 싸우는 나비 한 마리의 생채기. 첫 고향의 꽃밭에 마즈막까지 의지하려는 강렬한 바라움의 향기였다.


  앞으로도 저 강을 건너 산을 넘으려면 몇 '마일'은 더 날아야 한다. 이미 그 날개 피에 젖을 대로 젖고 시린 바람이 자꾸 불어간다. 목이 바싹 말라 버리고 숨결이 가쁜 여기는 아직도 싸늘한 적지(敵地).


  벽, …… 처음으로 나비는 벽이 무엇인가를 알며 피로 적신 날개를 가지고도 날아야만 했다. 바람은 다시 분다. 얼마쯤 날으면 아방(我方)의 따시하고 슬픈 철조망 속에 안길,


  이런 마즈막 '꽃밭'을 그리며 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슬픈 표시의 벽, ()……   

                                                               

                                            출전 휴전선(1967)

 

 

<시어 풀이>

 

바라움 : 바람. 소망

아방(我方) : 우리 쪽. 또는 우리 편의 사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나비''철조망'이라는 두 개의 이질적인 제재를 통해, 분단된 민족의 아픔을 형상화하고 통일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작품이다.


  '나비'는 비극적 현대사의 질곡(桎梏)을 거쳐오며 상처를 받으면서도 통일과 편화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그 꿈을 향해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상징한다. ‘철조망은 분단과 대치의 상징으로 나비에게 좌절을 주지만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이 시는 한 마리의 나비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나비의 목소리와 시인의 목소리를 교차시키고 있다. 1, 3, 5연에서는 나비를 화자로 볼 수 있고, 2, 4연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와 같이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 드러난다.

 

 1연에서 나비는 피로와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 벌써 해가 서쪽에 기울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조그만 날개로 눈앞에 보이는 강과 산을 넘어야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먼 거리를 날아온 듯. ‘나비의 날개는 지쳤다. ‘서로 가슴 타는 그러한 거리라는 표현은 남과 북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 혹은 이데올로기적인 거리일 것이다. 그래서 나비는 분단과 대치의 현실을 바라보며 아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남북의 대치 상황, 그 긴장과 폭력의 상황을 시인은 2연에서 모진 바람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피비린내 나게 싸우는 나비 한 마리는 근현대사의 질곡을 겪어 온,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이러한 생채기를 지니고 있으나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도달하고자 하는 첫 고향의 꽃밭이 있기 때문이다. ’첫 고향의 꽃밭은 바로 사랑으로 충만한 화해와 평화의 세계이다. 그래서 그 세계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갖는다.

 

 3연에 오면, 가야 할 길의 아득함과 고단함으로 숨 가빠하는 나비의 목소리가 애잔하다. 이는 혹독한 현실 속에서 지치고 괴로워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이다. ‘여기는 아직도 싸늘한 적지(敵地)’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이는 물론 북한에 대한 시인의 적대적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는 휴전선 너머에서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오려고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나비의 관점에서 이런 대치의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며, 따라서 시인은 남쪽 또는 북쪽의 입장에서 상대를 적대시하는 관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분단과 대치의 상황이 반드시 끝나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4연에서 시인은, ‘얼마쯤 날으면 아방(我方)의 따시하고 슬픈 철조망 속에안길까 하는 나비의 초조감과 피로감을 표현하고 있지만, 시인이 소망하는 것은 이런 철조망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 ‘꽃밭이라는 말이다. ‘철조망은 분단 상태 속에서 어느 한쪽이 점령하고 있는 땅을 상징할 것이다. 그 어느 한쪽의 철조망 속은 물론 나비의 입장에서 안전한 곳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기에, 따뜻하기는 하지만 슬픈 철조망 속인 것이다.

 

 

작가 박봉우(朴鳳宇, 1934~1990)

 

 

 시인. 호는 추풍령(秋風嶺). 전남 광주 출생. 1956조선일보신춘문예에 <휴전선>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시집에 휴전선(1957), 4월의 화요일(1962), 황지의 풀잎(1976), 서울 하야식(1985), 딸의 손을 잡고(1987)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 시인(詩人)의 사랑(1988)이 있다.

 

 그의 시는 냉철한 현실 인식으로 전후의 암울한 상황 아래서 민족 분단의 현실을 의욕적으로 탐구하였고, 4·19혁명 후에는 타락한 현실에 대한 허무감과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한마디로 그는 분단 비극의 시인 또는 통일지향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시로서 저항하다가 불행하게 사라져 간 비극의 시인, 불운의 시인으로서 그는 시사에 기록될 수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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