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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월훈(月暈) / 박용래

by 혜강(惠江) 2020. 3. 22.

 

 

 

 

 

월훈(月暈)

 

 

 - 박용래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드러내면 보이는 마을.

 

  갱()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 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출전 문학사상(1976. 3.)

 

 

<시어 풀이>

 

월훈(月暈) : 달무리

허방다리 : 함정

() : 광물을 파내기 위해 땅속을 파 들어간 굴. 구덩이

봉당(封堂) :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마루를 놓을 자리에 마루를 놓지 아니하고 흙바닥 그대로 둔 곳

시나브로 :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처마깃 : 지붕이 도리 밖으로 내민 부분.

자리맡 : 잠자리의 곁.

밭은 기침 : 소리도 크지 않게 자주 하는 기침

 

 

이해와 감상

 

 

 ‘월훈(月暈)’달무리라는 뜻으로, 달무리가 갖는 그리움의 이미지를 통해 겨울밤 산속 외딴집에 홀로 사는 노인의 외로움을 묘사한 서정시이다. 한자어를 배제하고, 토속어와 고유어를 사용하여 향토적인 정감을 짙게 나타내고, 겨울의 외딴 마을 풍경과 노인의 고독과 그리움을 애상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노인의 절절한 외로움을 겨울 귀뚜라미에 감정 이입하여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경어체의 사용과 명사 종결 어구를 삽입하여 정감의 깊이를 더해 주고, 쉼표와 의태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시적 효과를 상승시키는 동시에 첩첩산중에서 방 안으로 이동하는 시상 전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첩첩산중의 후미진 마을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의 배경인 마을은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로 현대 문명사회와는 완전히 차단된 토속적인 공간이다. 흙을 덮어 만든 함정(허방다리)을 드러내야 보일 정도의 마을이다. 즉 신비롭고 동화적인 이상세계가 아니라 원시적이면서도 토착적인 세계일 뿐이다.

 

 2연에서는 마을과 외딴집의 밤 풍경을 그려 내고 있다. 노루 꼬리만큼 짧디짧은 겨울 해가 저물면 몇 안 되는 집마다 봉당에 불을 켠다.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의 불빛이 긴 밤 내내 모과 빛처럼 뿌옇게 창문을 밝히고 있다. 잠 못 드는 노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게 한다.

 

 3연은 외로움에 잠 못 이루는 노인의 기다림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노인은 긴긴 겨울밤 잠시 눈을 붙였다가 잠에서 깨어나 무료한 시간에 무와 고구마를 깎다가 겨울밤의 바람 소리에 귀를 모은다. 짚단과 짚 오라기의 서걱거림, 처마 깃 새의 작은 날갯짓까지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한다. 그러나 숨까지 죽여가며 새들의 온기를 생각하지만 결국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새들의 온기를 생각했을까? 노인의 기다림과 외로움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4연은 귀뚜라미의 통곡과 같은 노인의 울음을 노래한다. 긴긴밤, 노인의 잔기침이 멎을 무렵이면 겨울 귀뚜라미가 운다. ‘귀뚜라미는 노인의 감정이 이입된 사물로, 벽 속에서 떼를 지어 울어댄다. 벽이 무너지라고 울어대는 겨울밤의 귀뚜라미 소리는 겨울밤의 농밀한 적막감을 깨뜨릴 만큼 크게 들린다. 그만큼 겨울밤에 노인의 고독감이 켜켜이 쌓인다.

 

 마지막 5연은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월훈이라는 시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타나는데 창호지 문살에 달무리가 떠오르면서 달무리 진 겨울밤의 적막한 풍경을 보여주면서 산골 노인의 외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시적 대상인 노인의 모습을 그려 내면서 현대 문명과 단절된 첩첩산중 마을의 외딴집에 사는 노인의 외로운 삶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노인이 겨울밤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기는 모습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

 

 

작자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충남 논산 출생, 1950년대부터 활동한 대표적인 순수시인이다. 그의 문학 활동은 향토 문인들과 동백시인회(柊柏詩人會)’를 조직하여 동인지 동백(柊柏)을 간행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55현대문학<가을의 노래>, 이듬해 <황토길>, <>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싸락눈(1969), 강아지풀, 백발(百髮)의 꽃대궁, 유고시집 먼 바다(1984)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우리 물빛 사랑이 풀꽃으로 피어나면(1985)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전원적·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심화, 확대한 것이 특징이며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여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저녁눈>은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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