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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구절초(九節草) / 박용래

by 혜강(惠江) 2020. 3. 23.

 

 

 

 

구절초(九節草)

 

 

- 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달여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춧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추분)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 시집 백발의 꽃대궁(문학예술사, 1979)

 

 

이해와 감상

 

 

 구절초는 가을 내내 우리의 산야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꽃이다. 음력 99(중양절인 어제)이면 아홉 마디가 되어 꽃을 채취한다 해서 구절초라 불렸다. 구절초는 꽃대 하나에 꽃 하나만 피우고 희거나 엷은 분홍색을 띤다. 흰 꽃잎이 신선보다 더 돋보인다고 하여 선모초라고도 불렸다.

 

 박용래는 가을이 시작되어 구절초를 보자마자 매디매디 나부끼는’ ‘매디매디 눈물 비친죽은 누이를 떠올린다. ‘누이에 대한 아프고 서러운 기억이 마음속에 상처로 오래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바람에 나부끼는 구절초를 보고 사랑하는 누이와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며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모두 8행으로 된 이 작품에는 사랑이라는 시어가 중간의 3행을 빼놓고는 모두 마지막 시어로 등장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죽은 누이이며, 호격조사(呼格助詞)를 붙여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선창에 비 뿌리던 날이었다고 한다. 강 건넛마을 홀아비에게 시집간 누이는 첫아이를 낳던 중 난산 끝에 산후 출혈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시집가서 1년도 못 되어 스물여덟인가 아홉이었다. 어릴 때 누이의 등에 업혀 가을 언덕을 오르고 별을 바라보았을 시인에게 누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시인은 그 누이가 세상을 떠난 뒤 금강을 바라보며, 부소산 기슭을 건너다보며, 구절초에 마음을 빼앗기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된다.

 

 시인은 어린 시절, 누이와 함께 부소산 기슭에 핀 구절초를 캐서 뿌리를 달여 약으로 먹곤 했다. 구절초에는 크리샌더민이라는 성분이 있어 꽃잎뿐 아니라 잎과 줄기, 뿌리 모두 약용으로 사용된다. 한의학에서는 혈액순환과 생성에 도움을 줘 부인병과 건위, 신경통과 중풍, 정력 증진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시골에서 약용으로 많이 애용하였다.

 

 또, 여학생들이 서양식으로 마아가렛이라 부르며 여름 모자 차양처럼 생긴 꽃의 가지를 꺾어 단추 구멍에 꽂았던 기억이며, 구절초가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핀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놀라곤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모두 죽은 누이와 관련된 기억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첫 행을 반복하여 수미 상관의 구성으로 죽은 누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박용래 약전>을 쓴 소설가 이문구는 시인을 기리켜 눈물의 시인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시인과 만나는 수십 년 동안 시인이 울지 않는 걸 단 두 번밖에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사랑하던 누이를 잃은 슬픔이 결국 박용래로 하여눈물의 시인이 되게 했다. 상처가 시의 힘으로 자랐던 것일까?

 

 

작자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충남 논산 출생, 1950년대부터 활동한 대표적인 순수시인이다. 그의 문학 활동은 향토 문인들과 동백시인회(柊柏詩人會)’를 조직하여 동인지 동백(柊柏)을 간행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55 현대문학 <가을의 노래>, 이듬해 <황토길>, <>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싸락눈(1969), 강아지풀, 백발(百髮)의 꽃대궁, 유고시집 먼 바다(1984)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우리 물빛 사랑이 풀꽃으로 피어나면(1985)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전원적·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심화, 확대한 것이 특징이며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여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저녁눈>은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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