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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휴전선(休戰線) / 박봉우

by 혜강(惠江) 2020. 3. 22.

 

 

 

 

 

휴전선(休戰線)

 

 

- 박 봉 우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상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조선일보(1956)

 

 

<시어 풀이>

 

요런이런의 남도 사투리
쓰는가하겠는가의 남도 사투리
시방지금의 남도 사투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의 긴장을 제재로 삼아,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이 시는 1956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얼마 안 되는 당시 상황에 대단히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휴전선이라는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사물을 소재를 선택하여 우리 민족이 처한 남북 분단의 비극적인 상황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전쟁 혹은 비극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피하고 암시적인 시어를 선택함으로써 분단과 전쟁을 떠올릴 때 흔히 범하기 쉬운 감정의 과잉 분출을 막고, 독자들에게 분단이 우리에게 주는 피폐함을 상기시킨다. 상징적인 시어를 많이 사용하여 주제를 우회적으로 파악하게 하고, 의문형 종결어미의 사용으로 안타까움, 노여움의 정서 표출하는 등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수미 상관적 구성 방식으로 시상을 마무리하였다.

 

 1연에는 우리가 처한 비극적 분단 상황에 대한 탄식이 나타나 있다. ,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155마일 휴전선을 마주하고 있는 민족의 분단 상황을 이상할 만큼 담담한 어조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화자는 전쟁이 일시 중단되어 대립과 불신으로 긴장되고 있는 상황을 천둥 같은 화산으로 비유한다. 이 분단된 상황은 언젠가는 전쟁으로 터질 수밖에 없으며, 그걸 알면서도 요런 자세로있어야 하는 긴박한 대치 상태에 있음을 탄식한다. ‘요런은 긴장 상태의 분단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화자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는 표현이다.

 

 2연에서 시적 화자는 불안한 대치 상황에서 느끼는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먼저, 팽팽한 긴장감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남과 북의 현실을 휴전선의 모습을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으로 묘사한다. 이어서 민족의 진취적 기상을 떨친 고구려 같은 정신이나, 분열된 삼국을 통일하는 신라 같은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비판한다. 그리고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라며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우리가 무엇 때문에 불안한 얼굴을 하고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반문한다.

 

 3연에서 시적 화자는 분단으로 쇠퇴해가는 민족의 역사를 지적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정맥이 끊어진 신체인 것이 분명한데, 분단 상황이 고착되면 우리 민족은 야위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며 절망한다.

 

 4연에서는 언제 다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분단 상황에서의 불안한 긴장감이 나타나 있다.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 ‘모진 겨우살이같았던 6·25 전쟁의 비극적 체험을 겪은 화자는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이 바람에 쓰러지는 것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라고 외친다. 여기서의 꽃은 분단 극복을 통해 환히 피어나야 할,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찌할 수 없이 분단 상황을 무능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라는 긍·부정의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5연에서는 처음에 제시한 전체적 주제를 수미 상관의 구조를 통해 남북이 대립하는 분단 상황에 대한 탄식을 강조하면서, 역사적 필연으로서의 분단 극복과 민족의 통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강렬한 소망을 보다 절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시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불의와 비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른바 참여시의 특성을 갖는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 날을 갈망하는 시인의 절규가 완곡한 산문 율조의 형식으로 절제되어 나타나 있다.

 

 이처럼 박봉우의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육성(肉聲)의 시'이다. 50년대는 전쟁과 폐허를, 60년대에는 민주 혁명과 군사 독재를, 70년대에는 속 빈 강정 같은 풍요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빈곤감을, 80년대는 민주화 열망 등 광복 이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맞닥뜨리고 시를 쓴 시인이었다.

 

 

작가 박봉우(朴鳳宇, 1934~1990)

 

 

  시인. 호는 추풍령(秋風嶺). 전남 광주 출생. 1956조선일보신춘문예에 <휴전선>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시집에 휴전선(1957), 4월의 화요일(1962), 황지의 풀잎(1976), 서울 하야식(1985), 딸의 손을 잡고(1987)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 시인(詩人)의 사랑(1988)이 있다.

 

  그의 시는 냉철한 현실 인식으로 전후의 암울한 상황 아래서 민족 분단의 현실을 의욕적으로 탐구하였고, 4·19혁명 후에는 타락한 현실에 대한 허무감과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시로서 저항하다가 불행하게 사라져 간 비극의 시인, 불운의 시인으로서 그는 시사에 기록될 수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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