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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거산호(居山好) 2 / 김관식

by 혜강(惠江) 2020. 3. 21.

 

 

 

 

 

거산호(居山好) 2

 

 

- 김관식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하는 데다가
보옥(寶玉)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그 품 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아아(峨峨)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네 품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 같은 산 정기(精氣)를 그리며 산다.

 

- 창작과 비평”(1970)

 

 

<시어 풀이>

 

장거리 : 장이 서는 거리, 세속적인 삶의 공간

()하는 : 오래 사는

보옥(寶玉) : 보석

아아(峨峨)라히 : 산이나 큰 바위가 험할 정도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이해와 감상

 

 

 ‘거산호(居山好)’산에 사는 것이 좋다.’라는 뜻으로, 세속을 벗어나 자연에 동화되어 살기를 소망하는 화자의 자연 친화(自然親和)적인 삶의 태도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동양적 시 세계를 독자적으로 추구해 온 김관식의 말년에 쓴 대표작으로 그의 고풍스러운 시풍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는 영원한 자연과 유한한 인간사를 대조하여 반문명적, 반세속적인 소박한 생활관 제시하고, 안빈낙도, 유유자적하는 생활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장거리’, ‘사람은 세속적이며 가변성을 가진 존재이며, 이에 대비되는 은 불변적이며 영원성을 의미한다.

 

 화자는 세속(장거리)를 등지고 북창을 열고 앉아 가변적인 인간사와는 달리 언제나 변함없는 자연을 노래하며 산이 지닌 덕성(겸허)을 배운다. ‘고요하고 너그러워’, ‘겸허한 산은 동양 정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의 속성이다.

 

 그리고 화자는 산에 사는 동안 산에서 살고, 죽어서는 산에 묻히고 싶다며 산을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영원한 안식처로 인식한다. 이것은 산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을 연결해 준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기에 화자는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라는 역설법으로 산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노래한다이처럼 자연과 동화되려는 태도에는 탈() 세속적인 동양적 세계관이 드러나 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물질과 권위에 가득 찬 세속을 벗어나 노장의 무위에 가까운 경지를 추구하는 시인의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일찍이 한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시인은 초기 시에서 어려운 한자어를 많이 구사하여 유학자적 풍취를 짙게 드러내는 한시풍의 시를 주로 창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지조 높은 선비의 자세를 동양적 달관으로까지 승화시켜 표현한 작품을 썼다. 이 작품은 시인이 요절하기 몇 달 전에 발표한 작품으로, 시인이 평생 추구한 동양 정신이 작품 속에 용해되어 높은 서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연은 동화와 순응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다. , 그의 시의 자연은 동양 정신 그 자체인 셈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화자는 분명히 세속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는' 역설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는 '꿈 같은 산 정기를 그리며' 살았다. 여기서 우리는 평생 가난과 병고 속에서 치열하게 자기 세계를 굳게 지켜나간 시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작자 김관식(1934~1970)

 

 

 호는 추수(秋水우현(又玄). 4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다. 강경상고를 다닐 때 정인보·최남선 등 한학의 대가를 찾아가 성리학·동양학을 공부했다.

 

 1955·계곡에서·자하문 근처등이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실리면서 문단에 나왔으나, 이미 그전에 첫 번째 시집 낙화집(1952)을 펴낸 적이 있었다. 1955년 이형기·이중로와 함께 시집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 1956김관식시선을 펴냈다.

 

 초기에는 전통적 서정을 읊다가 차츰 가난한 자신과 이웃에 대한 연민을 노래했다. 그 후에 씌어진 시들은 어려운 한자를 많이 써 동양의 유학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허세로 기울고 있어 삶의 절실한 체험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1960년대 후반에 와서는 이런 결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사회적 부조리와 모순을 노래했다. 대표작으로 , 귀양가는 길, 동양의 산맥, 다시 광야에등이 있다.

 

 1960년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여 재산을 다 날린 뒤, 죽을 때까지 특별한 직업 없이 홍은동 산기슭에 무허가집을 짓고 살았다. 심한 주벽(酒癖)과 기행을 일삼아 천상병과 함께 문단의 기인으로 많은 화제를 남겼다. 가난과 10여 년 동안의 병마로 인해 36세에 요절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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