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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전라도길 - 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 / 한하운

by 혜강(惠江) 2020. 3. 20.

 

<사진: 소록도가 보이는 정경>

 

전라도길

- 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

 

 -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 신천지(1949.4)

 

<시어 풀이>

지까다비 : 노동자용의 작업화(일본어), 일할 때 신는 일본식 운동화

 

이해와 감상

 이 시는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49'신천지4월호에 발표된 12편의 작품 중의 하나로서 이 시의 부제(副題)'소록도로 가는 길'이다.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속해 있는 섬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소가 있는 곳이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일반인들과는 철저하게 격리된 하나의 유형지(流刑地)였다. 이 시의 작자 한하운은 나병의 병고에서 오는 저주와 비통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천형(天刑)의 시인이다.

 이 시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이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나환자인 시인이 수용소가 있는 소록도로 향하는 전라도 길에서 느낀 나병 환자들의 유랑과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나환자라는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객관적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서정적이고 민요적인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도 하나의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모두 9연으로 된 이 시는 1연에서 숨 막히는 더위 속에 걷는 황톳길을, 2연에서는 문둥이를 만나면 반갑다는 내용을, 3~4연은 더위 속에 절름거리며 걷는 끝없는 황톳길을, 5연은 발가락이 한 개 떨어져 나가는 것에서 느끼는 서러움을, 6연에서는 멀기만한 소록도 가는 길을 표현하고 있다.

 시의 구성을 따라가 보자. 전라도길, 붉은 황토의 소록도 가는 길은 단순히 소록도를 찾아가는 길이 아닌 자신의 힘들고 서글픈 인생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천형이라는 운명적 삶을 살아가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은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라는 첫 구절과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나타나 있다. 가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가야 하는 길이기에 내딛는 걸음마다 붉은 황톳길이요, ‘숨 막히는 더위뿐이다.

 게다가 가도 가도 천 리라 했다. 여기서 천 리는 소록도까지의 공간적 거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화자의 절망적 모습이자 일반인과 결코 동화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거리감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라도 길은 천형(天刑)의 길을 걷는 막막함 뿐이다. 그 아득하고 막막함 속에서 어쩌다 낯선 친구를 만나면/ 우리 문둥이끼리 반갑다고 화자는 진술한다. 이 진술 속에는 몸이 성한 세상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은 동병상린(同病相燐)의 깊은 동료애(同僚愛)에서 오는 반가움이요, 동시에 버림받은 자의 서글픔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게 극한의 슬픔을 안고 천안에 이르렀는데도 서산에 걸린 여름 해는 여전히 거친 수세미 같은무더위를 내뿜고 있는 길을 절름거리고 간다. 참 서러운 정경이다. 그러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느 버드나무 아래 주저앉아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진 사실을 발견한다. 애지중지하는 신체 한 부분이 잘리는 끔찍한 상황은 화자에겐 큰 충격이요 고통이었으리라.

 그런데도 화자는 이 극한의 상황에서 발가락이 잘려나간 데서 오는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사실만을 말하는 데 그친다. 놀라는 기색도 없고, 서러운 감정을 일체 드러내지 않는다. 이처럼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천형(天刑)의 길을 걷는 화자의 냉엄한 현실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화자는 발가락이 잘린 것을 알면서도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천리 길을 가고자 한다. 나병 환자의 숙명(宿命)임을 알기 때문이다.

 1940신천지발표된 시 <전라도 길>은 한하운 시인이 시인으로 등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문둥병 시인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한하운이 5학년 때 '한센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에게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것이었다. 그 후 그의 인생은 ㅏ병(癩病)의 병고(病苦)에서 오는 저주와 비통(悲痛)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간간이 병세가 호전된 틈을 타서 일본과 중국을 드나들며 학구열을 불태운 엘리트였지만, 그는 천형(天刑)의 시인으로 1956년까지 치열한 시를 썼던 시인이었다.

 

작자 한하운(韓何雲, 1919~1975)

 본명은 태영. 보통 학교 시절 한센병에 걸린 그는 1937년 병세가 호전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호시에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2년 뒤 다시 병세가 악화하여 귀국한다. 얼마 동안 요양한 다음 이번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대학 농학원에서 축목학(畜牧學)을 전공하고 귀국한다.

 1943년 함경남도 도청에서 근무하다가 1945년 나병이 악화하여 그만두었다. 1946년 함흥 학생 사건에 연루되어 반동분자로 투옥된 바 있고, 1948년 공산 치하를 피해 월남하여 한동안 유랑생활을 했다. 1950년에 성혜원, 1952년에 신명보육원을 설립·운영하는 한편, 1953년 대한 한센 연맹위원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나병 환자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1949년 이병철(李秉哲)의 소개로 신천지에 시 전라도 길12편을 발표하여 등단했다. 나병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노래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1949년 첫 시집 한하운 시초를 펴낸 후 문둥병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어 제2 시집 보리피리(1955)와 제3 시집 한하운 시 전집(1956)을 펴냈는데, 여기에 실린 시들은 민요 가락에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1957)과 자작시 해설집 황톳길(1960), 정본 한하운 시집(1960)을 펴냈다. <참조 : 다음백과>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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