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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의자(椅子) / 조병화

by 혜강(惠江) 2020. 3. 19.

 

 

 

 

 

의자(椅子)

 

 

 

 - 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 13시집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조병화의 제13 시집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에 수록된 연작시 <의자>의 열 편 중에 일곱 번째 시이다. 이 시는 시대와 사회의 주역이 되는 자리를 의미하는 '의자'를 통해서 세대교체(世代交替)의 필요성과 역사 연계의식(連繫意識)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의자'는 일상적이며 기능적인 의자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무대이며 터전이다. 의자는 사회적 지위, 직책, 권력, 영예 등을 상징하는 시어로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며, 동시에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화자인 는 먼 옛날 어느 분이 물려준 의지를 다음 세대인 어린 분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 어린 세대에게 경어체와 존칭을 사용하여 자신을 낮추고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반복법과 점층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수미 상관의 구성으로 형태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비워 드리지요비워 드리겠어요비워 드리겠습니다와 같이 어휘의 변조를 통해 화자의 세대교체에 대한 신념과 결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모두 4연으로 된 이 시는 기승전결(起承轉結) 구조로 되어 있다. 1연은 역사 인식과 세대교체의 필연성을, 2연은 역사 인식과 세대교체에 대한 필연성과 의지를, 3연은 역사적 존재 계승의 당위성을, 4연에서는 역사 인식과 세대교체에 대한 필연성을 다시 다짐함으로써 마무리 짓고 있다.

 

 1~2연에서 지금 어드메쯤어디쯤의 예스러운 말인데, 이 말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성(連續性)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며, ’아침을 몰고 오는 분‘, 즉 새 시대의 주역에게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라는 말로 미련 없이 자신의 지위를 양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자의 의식은 앞 세대를 지칭하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라며 세대교체의 당위성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형을 써야 할 자리에 내게 물려주듯이의 현재형으로 표현한 것은 현실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박진감 있게 표현하려는 시작 의도로 보인다. 4연에서는 세대교체의 필연성을 다시 강조하면서 마무리된다.

 

 사실 이 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3연을 포함하여 어느 한 연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이 시는 동일한 어구를 세 연에 걸쳐 일정하게 반복하여 점층적으로 주제를 강조하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역사의식에 바탕을 두고, 존재의 역사적 계승과 세대교체의 필연성을 의자라는 상징적인 제재에다 교묘히 배합하여 심원(深遠)한 우주의 질서를 평이한 시어(詩語)로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세대를 맞아 역사적 위치와 사회적 주역(主役) 위치를 물려주면서도 비관하거나 절망함이 없는 달관(達觀)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성은 이 작품의 평이한 언어에도 불구하고 내용상으로 무게를 지니게 하는 효과도 겸하고 있다.

 

 

작자 조병화(趙炳華, 1921~2003)  

 

 

 호는 편운(片雲). 경기도 안성 출생, 경희대 국문과 교수 엮임.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문단에 등장하여, 도회인의 애상을 평이한 수법으로 노래하여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30여 권이 넘는 시집을 낼만큼 다작의 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처음 시집 이후, 하루만의 위안(1950), 패각의 침실(1952), 인간고도(1954), 사랑이 가기 전에(1955), 서울(1957),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1959), 밤의 이야기(1960), 낮은 목소리로1962), 공존의 이유(1963),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1964), 가숙(假宿)의 램프(1968), 오산 인터체인지(1971), 어머니(1973), 후회없는 고독(1990) 등 수많은 시집을 남겼다.


  그의 다작의 비결은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본질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를 쉬운 일상의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많은 독자와 솔직한 대화를 이루어 왔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현대시가 난해하고 안 팔린다는 통념을 무너뜨린 희소한 시인이기도 하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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