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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가을에 / 정한모

by 혜강(惠江) 2020. 3. 19.

 

 

 

 

 

가을에

 



- 정한모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작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쥔 아기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상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墜落)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주십시오

 

               - 여백을 위한 서정(1959)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물질문명에 의해 인간성 상실의 위기에 처한 현대 사회의 위기감을 기도 형식을 빌려 형상화함으로써 인간성 옹호에 대한 기원을 드러낸 주지적인 서정시이다. 주로 인간의 본질적인 순수서정과 휴머니즘을 노래한 정한모의 작품 주조를 이루는 것은 바람과 꽃, 계절, , 시내 등과 같은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인간의 따뜻한 눈길이나 정을 곁들이고 있다.

 

  <가을에> 역시 그의 일상적인 작품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햇빛나뭇잎’, ‘종소리와 같은 자연적인 소재와 엄마’, ‘아가’, ‘할머니와 같은 인간의 따뜻한 정서가 담긴 시어를 통해 정한모만의 조화로운 작품세계를 형성해내고 있다

 

 이 시는 대조적 심상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동화적 모티프를 삽입하여 인간성을 옹호하려는 순수 의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반() 문명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휴머니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구도는 각 단락의 말미를 믿게 해 주십시오나 혹은 찾게 해 주십시오’, ‘살고 싶습니다와 같은 구절로 끝을 맺음으로써 일상적인 소망과 기원을 절대자에 대한 기도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순수한 서정과 휴머니즘을 신앙시의 형태를 빌려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2연에서는 평화로운 세계에의 소망과 순결한 신앙 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햇빛에 물든 나뭇잎과 조화를 이룬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이 세상을 떠받들 수 있다는 내면적인 논리나 엄마 곁에 무릎 꿇은 아가의 손아귀에서 당신으로 표현된 절대자의 실존과 섭리를 확인하고자 한다. 자연인간으로 이어지는 화자의 발상은 화자가 소망하는 바, 대립과 갈등이 아닌 조화로운 세계인 동시에 전 인류가 공통으로 꿈꾸는 평화의 세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소망이 있기에 화자는 3~4연에서 꿈꾸는 조화로운 세계가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 같은 날’, 즉 인류 파멸의 날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거부하며, 할머니가 들려준 동화 속의 아름다운 세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소망한다. 이러한 믿음과 희구는 현대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피폐화한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이 지키고 보존해야 할 꿈과 전통의 정신세계요 가치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5연은 인류 구원에 대한 간절히 기도를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먼저 어린 시절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밑도 없이 끝도 없이 추락하여 그 여파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공포의 경험을 상기하면서 그 공포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도한다. 이 개인적인 체험은 우리들로 확대되어 보편적인 경험으로 대치되면서 화자는 현대 문명 앞에서 추락해 가는 우리의 정신 세계(인간성 상실, 공포와 절망감, 쾌락과 세속주의, 물질주의 등)에 우려를 표명하는 동시에 인간 가치의 소중함을 기도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현재를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추락, 공포, 무서운 진리가 난무하는 현실적 삶에 직면한 시적 화자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나, 화자는 따뜻하고 순수한 인간애야말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와 같이 인간이 서로에게 보이는 따뜻하고 순수한 믿음이야말로 이 세계를 유지하는 힘으로 보고, 이를 유지하고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아가의 기도와 같이 인간적인 가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 역시, 정한모 시인이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자 정한모(鄭漢模, 1923~1991)

 

 

 시인. 충남 부여 출생. 1945년 동인 잡지 백맥(白脈)에 시 <귀향시편(歸鄕詩篇)>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46~47시탑, 주막등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주로 인간의 본질적인 순수 서정과 휴머니즘을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카오스의 사족(蛇足)(1958), 아가의 방(1970), 새벽(1975)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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