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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비 / 정지용

by 혜강(惠江) 2020. 3. 17.

 

 

 

 

 

 - 정지용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야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돋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 백록담23(1941)

 

 

<시어 풀이>

 

소소리 바람 : 갑자기 부는 스산한 바람

여울 : 강이나 바다에서 물살이 세고 빠르게 흐르는 부분.
갈갈히 : 갈래갈래.
돋는 : 떨어지는.
: ‘의 옛말. 셀 수 있는 사물의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말.
소란히 : 어수선하고 시끄럽게.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비가 내리는 자연 현상을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이 시는 비 오기 직전부터 물줄기를 이루어 흐를 때까지의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고 있으며, 간결한 시행과 규칙적인 연 구성으로 되어 있고, 주관적 감정이 배제된 채 자연 현상만을 묘사하면서 시각적 · 청각적 심상을 구사하고 있다..

 

  전체 8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두 개의 연을 한 단락으로 묶어 모두 네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감상할 수 있다. 우선 1~2연은 비가 내리기 직전의 분위기가 그려져 있다. 먹구름이 끼면서 돌에 그늘이 차고, ‘소소리바람이 부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차고그림자가 드리우는 모습스산한 기운을 아울러 함축하고 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질 듯한 분위기를 갑자기 덮치는 구름 그림자와 휙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한 곳으로 몰리는 모습으로 표현한 데서 시인의 탁월한 언어 감각이 느껴진다.

 

  3~4연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후두둑 하며 세차게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비를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가늘고 곧은 다리로 튀듯이 걷는 산새 걸음거리로 비유하고 있다.


  5~6연은 빗물이 모여서 여울이 되어 흐르는 모습을 나타낸다. 굵고 세찬 빗줄기가 모여 마른 땅 위에 금방 물줄기를 만들며 흘러가는 장면을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로 생명감 있게 그리고 있다. ,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이기 때문에 아직 굵은 물줄기를 이루지 못하고, 마른 마당 여기저기 낮은 곳을 찾아 여러 갈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갈갈이 손가락을 편’, ‘수척한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7~8연은 멈춘 듯하다가 다시 쏟아지는 소낙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굵은 빗방울을 길가의 단풍잎에 떨어지는 소리로 표현하여 변화를 주고, 한꺼번에 갑자기 쏟아지지 않고 한두 방울이 굵게 떨어지다가 순식간에 그 수가 늘어나는 소낙비의 모습을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로 표현한 시인의 관찰력이 돋보인다.

 

 

작자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 충북 옥천 출생. 섬세한 이미지와 세련된 시어를 특징으로 하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휘문고보 시절 습작지 요람을 발간하는 등 일찍부터 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1920년대 중반부터 모더니즘 풍의 시를 써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무렵에 발표한 작품으로는 <향수>와 식민지 청년의 비애를 그린 <카페 프랑스>가 있다.

 

 그러나 정작 정지용의 시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1930년대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여하여, 김영랑과 함께 순수 서정시의 개척에 힘을 썼다. 그러나 김영랑이 언어의 조탁과 시의 음악성을 고조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인 데 비해, 정지용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표현의 방법을 개척하는 데 힘을 쏟았다.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의 구축,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 구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현대 시의 초석을 놓은 시인으로 평가된다.

 

 후기에는 동양적 관조의 세계를 주로 형상화하였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던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이후의 행적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이 통설로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는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등이 있고, 문학독본(文學讀本)(1948), 산문(散文)(1949) 등 두 권의 산문집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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