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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조찬(朝餐) / 정지용

by 혜강(惠江) 2020. 3. 17.

 

 

 

 

 

조찬(朝餐

 

 

- 정지용

 

 

 

해ㅅ살 피어

이윽한 후,

 

머흘머흘

골을 옴기는 구름.

 

길경(桔梗) 꽃봉오리

흔들려 씻기우고,

 

차돌부리

촉 촉 죽순(竹筍) 돋듯.

 

물소리에

이가 서리다.

 

앉음새 갈히여

양지 쪽에 쪼그리고,

 

서러운 새 되어

흰 밥알을 쫏다.

 

                        - 문장(1941)

 

<시어 풀이>

 

조찬(朝餐) : 아침 식사

이윽한 : 이슥한, 시간이 지난

머흘머흘 : 구름이 뭉게뭉게 낀 모양

길경(桔梗) : 도라지
갈히여 : 가리어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문장(1941)에 발표하였으며, 시집 백록담에 수록되어 있는 시로, 비 온 뒤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며 아침밥을 먹는 자신의 서러운 모습을 형상화한 관조적이며 애상적인 작품이다.  

 

  화자는 한편의 동양화 같은 풍경 묘사와 정제된 시어를 통해 여백(餘白)의 미를 드러내고 있으며, 선경후정(先景後情))의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 시는 전체 7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부터 제5연까지는 비 온 뒤의 아침의 정경을 원경(遠景)에서 근경(近景)으로 이동하면서 인상적으로 묘사하여 하나의 시적 공간을 형성한다. 햇살이 피어오르고 뭉게뭉게 구름이 골짜기 사이로 이리저리 몰린다. 도라지 꽃봉오리가 바람에 스친다. 차돌부리가 마치 죽순이 돋듯 땅 위로 드러나 보인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소리가 들린다. 아침 햇살,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가벼이 흔들리는 도라지꽃, 죽순처럼 돋아 보이는 차돌부리, 차가운 물소리는 모두 아침이라는 시적 공간을 형성하는 감각적인 이미지들이다. ‘물소리에 이가 시리다는 표현은 청각을 촉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이가 시린 것은 실제로 겪는 추위와 아픔이라기보다 정서적으로 서럽고 아픈 화자의 심리상태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제6연과 제7연에서는 서러운 아침밥을 맞이하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시적 공간에 정물처럼 등장한 새 한 마리는 양지쪽에 쪼그려 앉아 흰 밥알을 쪼아먹는다. 물론 서러운 새는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으로 서러운 새가 흰 밥알을 쪼듯 아무런 보람이나 의미도 없이 아침밥을 떠야 하는 화자의 처지를 상징한다

 

  작자인 정지용은 자신이 쓴 <조선 시의 완성>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시집 백록담을 내놓은 시절이 내가 가장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한 때다. 내가 내 자신의 피폐한 원인을 지적할 수 있었겠으나, 결국은 환경과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일제 말기 폭압적인 현실 상황에 직접 대항할 수 없는 화자의 초라하고 서글픈 처지를 담담하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자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 충북 옥천 출생. 섬세한 이미지와 세련된 시어를 특징으로 하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초기에는 이미지즘 계열의 작품을 썼으나, 후기에는 동양적 관조의 세계를 주로 형상화하였다. 시집으로는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등이 있다.

 

  해방 후 조선 문학가 동맹(카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50 6·25전쟁 이후 월북한 이유로 그의 작품은 한동안 금기시되어 왔으나 한국시문학사에서 그가 이룩한 감각적인 시 세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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