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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인동차(忍冬茶) / 정지용

by 혜강(惠江) 2020. 3. 17.

 

 

 

 

인동차(忍冬茶)

 

 

- 정지용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 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 문장(1941)

 

 

<시어 풀이>

 

인동차 : 인동덩굴의 꽃과 잎을 넣어 끓인 차.                  

장벽(腸壁) : 내장의 벽, 즉 창자 벽

삼긴 : 삶아진. 물에 넣고 끓여진. ‘삶다의 피동사 삶기다(삼기다)’의 관형사형

인동(忍冬) : 겨울을 견디다.

무시(無時) : 특별히 정한 때가 없이 아무 때나.

삼긴 : 삶긴. 물에 삶아 우려낸.

덩그럭 불 : 장작의 다 타지 않은 덩어리에 붙은 불.

사리다가 : 서리다가

잠착(潛着)하다 : 어떤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골똘하게 쓰다.

책력 : 달력

삼동(三冬) : 겨울의 석 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눈 내리는 겨울, 깊은 산중에서 홀로 인동차를 마시는 노주인의 모습을 통해 혹독한 현실에서도 초연하게 정신적 고결함을 지키면서 혹독한 현실을 견디는 삶의 자세를 감각적 이미지로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정지용의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산중에 책력도 없이' '인동다'를 마시며 살아가는 '노주인'인 작중 인물은 바로 시인 자신이며, 그가 마시는 '인동다'는 겨울로 표상된 일제 치하를 견디게 하는 인내와 기다림의 힘이 되어 준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이 시의 화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대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감정을 절제하고 있으며, 주로 시각적 이미지의 시어를 사용하여 시적 대상이 처한 상황을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색채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극대화하였고, 한시를 차용하여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5연으로 된 시의 1연에서는 인동차를 마시는 노주인을 그려낸다. ‘노주인의 장벽에/ 무시로 인동 삼긴 물이 나린다.’ 라는 표현은 차를 마신다는 평범한 사실을 개성적인 표현으로 바꿈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주는 낯설게 하기에 해당한다.

 

  2연과 3연은 방안의 풍경으로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을 보여준다. ,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꺼진 줄 알았는데, '도로 피어 붉고', 그늘져 있는 마당 한구석에 묻어 둔 '무가 순 돋아 파릇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견뎌내면, 현실 상황인 '겨울'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리라는 시인의 의지와 소망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4연 역시 방안의 풍경을 그려낸 것으로 풍설 소리에 잠착함을 보여 준다. 즉 부정적 현실인 바깥의 풍설 소리에 개의치 않고, 바깥세상에 초연한 채 정신적 고결함을 지키면서 혹독한 현실을 견뎌 내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 있다.

 

  마지막 5연에서는 눈 덮인 산중 바깥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산중은 시간을 초월하여 세상과 단절한 채 적멸에 잠기는 동양적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산중에 책력도 없이라는 구절은 당시선의 태상은자(太上隱者)의 시()에 나오는 山中無曆日에서 빌어,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산속에서 한가히 자연만을 즐기는 생활을 가리킨다. 눈이 하얗게 덮인 겨울을 상징하는 삼동이 하이얗다에서 하이얗다붉고’, ‘파릇하고와 같이 시각적 이미지를 드러내는데, 이것은 덩그럭 불의 붉은색과 무순의 푸른색, ‘하이얀 삼동(三冬)’의 흰색이 대비되면서 따뜻한 방 안과 눈이 몰아치는 외부 세계, 생명력 넘치는 봄과 얼어붙은 겨울이 대비되어 시의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인동(忍冬)’은 한자 그대로 겨울을 이겨낸다는 뜻인데, 이 작품이 창작된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노주인이 인동 삼긴 물을 나리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현실을 참고 이겨 내겠다는 의미로서, 이러한 노주인의 태도에서 바깥세상에 초연한 채 정신적 고결함을 지키면서 혹독한 현실을 견뎌 내고자 하는 의지를 읽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현실은 비록 '삼동이 하이얀' 시절로 세월 가는 것마저도 다 잊어버리고 싶은 험난한 세상이지만, '흙냄새가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 소리에 잠착하'듯이, 굳은 인내심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이 겨울 같은 모진 현실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작자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 충북 옥천 출생. 섬세한 이미지와 세련된 시어를 특징으로 하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초기에는 이미지즘 계열의 작품을 썼으나, 후기에는 동양적 관조의 세계를 주로 형상화하였다. 시집으로는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등이 있다.

 

  해방 후 조선 문학가 동맹(카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50 6·25전쟁 이후 월북한 이유로 그의 작품은 한동안 금기시되어 왔으나 한국시문학사에서 그가 이룩한 감각적인 시 세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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