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나비의 여행 – 아가의 방(房) / 정한모

by 혜강(惠江) 2020. 3. 18.

 

 

 

 

 

나비의 여행 아가의 방()

 

 

- 정한모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睡眠)의 강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날으다가

깜깜한 절벽,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부딪치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오면

아비규환(阿鼻叫喚)하는 화약(火藥) 냄새 소용돌이.

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邂逅)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恐怖)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 사상계(1965)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연약하고 순수한 존재인 나비(아가)의 꿈속 여행을 통해 인간성 회복에 대한 염원과 삭막한 현실에 대한 대결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시의 제목이 <나비의 여행-아가의 방()>으로 된 것을 보면, ‘나비는 곧 연약하고 순수한 존재인 아가와 동일시되는 대상으로, 시의 화자인 는 아가(나비)의 여행을 통해 아기에 대해서는 위로와 연민의 태도를 보이며, 아비규환의 전쟁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로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 시는 가출시련귀향'의 시간 순서에 따른 서사적 구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비적 구조를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부정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주제 의식을 부각하고 있다. 그리고 비유와 상징에 의한 표현 기법을 보여 준다.

 

 3연으로 된 이시는 1연에서는 나비(아가)의 여행과 좌절을, 2연에서는 나비의 여행에서 경험한 비극을, 3연에서는 여행에서 돌아온 아가에 대한 번민과 위로의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1연을 보자. 아가는 밤마다 꿈속에서 여행길을 떠난다. 그 길의 시작은 어둠으로 표현된 부정적인 현실이다. 아가의 꿈 속 세상은 아름다운 지난날의 기억처럼 희망으로 넘치는 빛 뿌리는 기억의 들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아가의 여행은 절망의 참상을 보여 주는 깜깜한 절벽(전쟁)‘이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미로(迷路)에 부딪힌 아가는 놀라 넋을 잃은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2연은 아가의 여행에서 목격한 비극적인 참상이 그려진다. 어둡고 무서운 꿈의 세계인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전쟁으로 인한 화약 냄새아비규환의 공포뿐이다. 전쟁의 세계는 연한 자줏빛을 띤 포연(연자색 안개)으로 자욱하고, 무서운 공포(파란 공포)로 인적이 끊겨 사랑은 날아가 버린 파랑새가 되고,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도 그리움의 꿈도 잡을 수 없는 절망적인 세사이 괴었다. 그야말로 인간의 이상 가치의 하나인 사랑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그런 어두운 세계일 뿐이다.

 

 

 3연에 오면, 화자는 꿈속에서 좌절을 맛보고 공포의 독수리에 쫓겨 기진맥진 귀환한 아기를 안아준다. 형식상 이 시는 아가가 가위눌려 신음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아가를 달래는 아가 보호자의 눈을 통해 그 아가가 꾸었음 직한 악몽을 현실의 참혹함으로 연상해 내고 있다. 그 현실의 참혹함을 바로 6·25라는 전쟁이 가져다준 것이다. 그것은 아가의 아름답고 행복한 꿈이 펼쳐지는 길을 방해하는 현실의 상황 이미지들로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화자가 전쟁이 남긴 반문명적 상황 앞에 선 아가의 여행을 통해서 전쟁이 남긴 반문명적 상황을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고발하는 시로 볼 수 있다.

 

 ’휴머니즘의 추구는 정한모의 시적 모티프다. 그가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주제와 천착하고 있는 세계는 인간성의 옹호와 인도주의 정신이다. 그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와 세계 질서의 중심에는 언제나 휴머니즘이 있다. 따라서 나비의 여행아가의 꿈은 이 시인이 추구하는 휴머니즘을 보여 주는 다른 이름의 같은 상징이자 심상이다. 현실이 지닌 야수적 폭력성과 비이성적 폭압성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나비(아가)의 여행()을 통해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비인간적인 가치와 질서를 부정하는 가운데 휴머니즘의 참된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작자 정한모(鄭漢模, 1923~1991)

 

 

 시인. 충남 부여 출생. 1945년 동인 잡지 백맥(白脈)에 시 <귀향시편(歸鄕詩篇)>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46~47 시탑, 주막 등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주로 인간의 본질적인 순수 서정과 휴머니즘을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카오스의 사족(蛇足)(1958), 아가의 방(1970), 새벽(1975)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자(椅子) / 조병화  (0) 2020.03.19
가을에 / 정한모  (0) 2020.03.19
바다 2 / 정지용  (0) 2020.03.18
비 / 정지용  (0) 2020.03.17
춘설(春雪) / 정지용  (0) 2020.03.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