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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보리피리 / 한하운

by 혜강(惠江) 2020. 3. 19.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ㄹ 닐니리

 

 - 2시집 보리피리(1955)

 

 

<시어 풀이>

 

* 인환(人寰) : 인간의 세계

* 기산하(幾山河) : 산하가 그 몇 해인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화자의 한 맺힌 삶을 애절한 피리 소리에 담아 표현함으로써,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나병 환자로서 방황하는 삶의 서러움을 아름다운 서정으로 극복한 작품이다.

 

 작품에 나타난 보리피리는 화자의 정서가 집약적으로 드러난 소재로, 화자는 보리피리 소리를 통해 고향어린 때’, ‘인간사에 대한 그리움과 보통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는 서러움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보리피리 불며' '-ㄹ닐니리'를 각 연의 첫 행과 끝항에 반복함으로써 음악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보리피리 소리는 화자의 가슴 속에 추억, 그리움, 향수를 상기시키는 것으로서 천형(天刑)과도 같은 질병으로 인한 아픔과 한()을 애절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3음보의 민요조 운율도 음악성에 한몫하고 있다.

 

 1연은 새파란 보릿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던 옛날 고향의 봄 언덕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고, 2연에서는 보리피리를 불면서 떠오르는, 유년 시절의 고향인 꽃동산청산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그렸다. 3연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던 거리와 뭇 인간들의 삶과 일을 그리워하고 있다. 마지막 4연에서는 자신이 방랑하던 여러 산과 강, 그 눈물 나던 언덕들에 얽힌 한 맺힌 비애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 특히 4연의 바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에 서는 당시 나병(한센병)을 터부시했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다른 사람이 사는 곳에 가까이 갈 수 없어 산과 강을 방랑할 수밖에 없었던 서러움(소외감, 절망감)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ㄹ닐니리', 이 피리소리는 방랑 생활의 극도의 애절함과 좌절감을 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며, 피리를 부는 행위는 천형의 병을 앓고 있는 화자가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행위라 할 것이다.

 

 평생을 나병으로 고통받은 시인인 한하운의 시는 인간의 고통과 절망이 극한적 상황에서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가?” “인간의 구원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나병이라는 천형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의지는 적극적이고 전투적이기보다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갖는데, 그것이 그의 시에서 뿜어내는 서정이며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겉으로 보기에는 낭만풍의 시인 듯하지만, 실은 천형인 나병으로 일생을 암담하게 살다간 시인의 인간 존재에 대한 절규가 담긴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천형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방랑하면서 한 맺힌 생을 살았으며, 그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

 

 

작가 소개 - 한하운(韓何雲, 1919~1975)

 

 

  시인. 함남 함주 출생. 나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의 특이한 체험을 바탕으로 1949신천지<전라도> 12편의 시를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시는 대체로 자신이 겪었던 나병을 소재로 하여 거기에서 오는 고통과 갈망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시집으로는 한하운 시초(1949), 보리 피리(1955), 한하운 시전집(1956), 가도 가도 황톳길(1989)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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