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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낙화(落花) / 이형기

by 혜강(惠江) 2020. 3. 15.

 

 

 

 

낙화(落花)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적막강산(196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을 인간의 사랑이별이라는 삶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꽃이 떨어지는 자연 현상을 통해 이별의 아픔이 영혼의 성숙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화자인 는 꽃이 지는 현상을 자신의 사랑이 끝나는 상황과 관련지어, 인간의 삶도 자연의 순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이별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 '낙화'를 인간사의 이별과 겹쳐 놓아 이중 구조를 이루고 있다.

 

 화자는 낙화를 통해 이별을 떠올리며 결별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꽃이 지는 것은 단순한 소멸과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위한 희생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람의 이별 역시 슬프지만, 영혼의 성숙 혹은 더 큰 만남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는 영탄과 독백의 어조를 사용하여 화자의 심정을 드러내는데, ‘가다, 뒷모습, 지다, 낙화, 결별, 죽는다, 헤어지다등의 하강적 이미지의 시어를 사용하여 결별이라는 이 시의 시적 상황과 조화를 이루어 쓸쓸하고 안타까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화자의 애상적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또 역설의 표현으로 화자의 의도를 강조하고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봄에서 여름을 거쳐 가을로 시상이 전개되며, ‘개화낙화열매로 이어지는 시상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1연은 낙화의 아름다움을, 2연은 낙화의 아쉬움을, 3연은 낙화의 순리적 수용을 노래하고 있다.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은 봄철의 개화를 격정에 비유한 것이며,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은 낙화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4연에서 언급되고 있는 녹음열매를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어 4~5연은 낙화의 희생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여기서 열매는 낙화 뒤에 얻어지는 것인데, 인생의 결별 뒤에 오는 성숙함이다.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에서는 이별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으로, 상황에 대한 희생적, 긍정적 수용 태도를 보여준다. 6연은 꽃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의인화한 것으로, 슬픈 표정을 한 젊은 여인이 가냘픈 손을 흔들며 떠나는 모습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마지막 7연은 주제가 집약되는 연으로, 낙화의 슬픔과 영혼의 성숙을 노래하고 있다. 나의 결별은 샘터에 물 고이듯조금씩 끊임없이 성숙하는 것으로서, 슬프지만 이별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정신적 성숙을 내 영혼의 슬픈 눈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태도는 슬픔의 변증법적 극복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면, 화자는 이별을 통한 사랑의 성숙과 아름다움을 자연물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 낙화 장면을 바라보며 이별을 자연의 섭리와 같은 운명적이고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별의 슬픔을 내적 성찰을 통해 승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사랑의 마음이 지나 가야 할 때를 깨닫고, 깨끗한 이별을 노래하고 그것을 통한 성숙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 이별이 비록 슬픈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 영혼의 성숙을 노래하고 있으므로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긍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시는 존재의 무상함과 아름답게 사라져가는 소멸의 미학을 특유의 반어법으로 표현하여 사라짐에 대한 존재론적·사회학적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자 이형기((李炯基,1933~2005)

 

 

 시인. 경남 진주 출생. 1949년 중학생 시절 문예지를 통해 등단, 최연소 등단기록을 세우고, 1950<코스모스><강가에서> 등이 서정주와 모윤숙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적막강산(1963), 돌베개의 시(1971), 꿈꾸는 한발(1975), 풍선 심장(1981), 보물섬의 지도(1985), 심야의 일기예보(1990], 죽지 않는 도시(1994), 절벽(1998) 등이 있다.

 

 초기에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서정을 절제 있는 언어로 형상화하였으나 점차로 모더니스트 적인 기법을 구사하여 서정을 지적으로 세련 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이형기는 사물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토대로 존재론적 진실을 추구하는 시들을 썼다. 그는 평론 분야에서도 크게 활동하여 감성의 논리, 한국문학의 반성, 시와 언어등의 시론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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