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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아지랑이 / 이영도

by 혜강(惠江) 2020. 3. 14.

 

 

아지랑이

 

       - 이영도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 출전 석류(1968)

 

<시어 풀이>

다사하다 : 조금 따뜻하다.

장다리 : , 배추 따위의 꽃줄기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당신의 숨결로 촉발된 사랑의 감정을 봄날 아지랑이와 나비에 빗대어 표현한 현대 시조이다. 사랑의 감정을 봄날의 정경과 관련지어 서정적으로 표현한 시로, 화자는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춘삼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표현하면서 이러한 사랑의 감정으로 인한 설렘을 나비가 날아가는 듯한 시각적 표현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66년 이 작품이 발표되자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현대시조의 대다수가 연작(連作)인데 비해 이 시조는 단수(單首)로 완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 율격은 고시조 평시조의 특징인 4음보의 율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배열에서 파격을 보이고 있다. 고시조의 전통적인 형식인 장별 배행 대신 한 장을 현대시의 한 연으로 간주하여 배열하고, 한 음보를 행을 나누어 제시하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 특히 종장에서는 현대시의 기법을 활용하여 나비라는 단어를 좌우로 배치함으로써 나비가 텃밭을 분분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것은 모더니즘 시의 표현 기법을 시조에 도입하여 종래의 형식에 시각적인 효과를 가져보려는 시도였다.

  표현에 있어서는 비유법을 활용하여 관념적인 대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으며, 시각적, 촉각적 심상을 통해 감각적인 느낌을 부여하고 있다. 초장은 화자는 당신의 숨결을 느낀다. 화자는 사랑하는 이의 숨결이 이마에 따뜻하게 와 닿는 것으로 묘사한다. 중장은 사랑의 감정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종장은 내 사랑이 봄날 나비와 같이 일렁인다. 여러 마리의 나비가 장다리 밭에 떠 있는 모습을 나비 4행으로 시각적으로 배열한 것은 파격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시조의 행 배열에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시조의 배행에서 강한 실험성을 보인 작품들이다. 자유시에서는 행갈이를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시조에서는 형식을 중시하여 장별이나 구별 중심으로 배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파격적이다. 이런 시를 구체시(具體詩)라고 하는데, 구체시는 글자가 가지는 의미는 무시하고 글자에서 도안이나 그림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글자를 그림의 수단으로 활용한 시를 말한다. 이 시 <아지랑이>에서는 장다리 밭에 나비가 나는 모습을 한 행으로 배행함으로써 구체시의 효과를 한껏 살려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자 이영도(李永道,1916~1976)

   호는 정운(丁芸), 시조시인. 경상북도 청도 출생.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의 누이동생이다.1945년 대구의 문예동인지 죽순(竹筍)에 시 <제야(除夜)>를 발표하면서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바람>(1956), <시조3>(1956), <지리산시초)>(1957), <한라산>(1958), <황혼에 서서>(1958), <설악산시초>(1959), <목련화>(1965), <수혈(輸血)>(1965), <아지랑이>(1966), <나목(裸木)>(1967), <백록담>(1968), <추청(秋晴)>, <구천동소묘>(1970) 등이 있다.

  그는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고유의 가락을 재현하고자 하는 한편, 여성의 맑고 경건한 계시주의(啓示主義)와 한국적 전래의 기다림, 연연한 낭만적 정서를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표현하였다. 대표작 <황혼에 서서>는 애모를 주제로 한 것이면서도 나약하지 않은 강렬한 자기 분신(分身)에 이르는 종교적인 애정을 노래하였다. <아지랑이>에서는 현대시조의 연작 형식을 벗어나 자유시 이상의 자재성(自在性)을 보인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였다.

  시조집으로 청저집(靑苧集)(1954), 석류(1968)가 있고 수필집으로 춘근집(春芹集)(1958), 비둘기 내리는 뜨락(1966), 머나먼 사념(思念)의 길목(1971) 등이 있다. 후기의 수필은 구도적인 면과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등 사색적인 면과 현실적 관심을 함께 드러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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