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by 혜강(惠江) 2020. 3. 13.

 

<사진 : 마르크 샤갈(Chagall)의 그림 '나와마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精脈)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

                                   - 김춘수 시전집(1976)

 

<시어 풀이>

 

*샤갈 :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1887~1985). 풍부한 개인적 경험을 화려한 색채와 환상적인 화풍으로 표현함으로써 초현실주의 미술에 영향을 끼침.
*관자놀이 : 귀와 눈 사이의 맥박이 뛰는 곳.
*쥐똥만 한 : 조그마한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샤갈의 그림인 나와 마을을 감상하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감각적인 언어로 표현한 시로, 봄의 맑고 순수한 생명력과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이 시는 시적 의미를 형상화하기보다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을 보면서 자유롭게 상상한 내용을 색채 위주의 감각적 이미지들을 통해 관념과 의미를 철저히 배제한 채 봄의 생명력을 생동감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순수한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무의미시(無意味時)’ 추구하는 김춘수의 1960년대의 작품 경향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의 시상은 화자의 자유로운 연상(聯想)에 의해 연결되고 있는데, ’정맥올리브 빛 열매 이어지는 소재들은 모두 봄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형 시어를 사용하여 생동감을 주고 있으며, 이질적인 시어들을 병치하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또한, 음성 상징어를 사용하여 인물의 모습을 실감이 나게 표현하고 있다.

 

 모두 15행의 단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 형태의 이 시는 눈 내리는 가운데 새롭게 살아나는 봄의 생명감을 그려내고 있다. 1행에서3월에 눈이 내리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봄과 겨울이 혼재한 환상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3월에 눈이 온다는 겨울이 아닌,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샤갈의 마을을 살포시 덮는 포용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2~4행에서는 봄이 다가오고 있는데 눈이 내린다는 아이로니컬한 정경을 배경으로 한 사나이의 마음속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봄이 다가온 3월에 눈이 오는 상황에서 사나이의 푸른 정맥이 새로 돋아나는 것은 봄을 맞는 새로운 의욕을 표현한 것이다. ‘새로 돋는 정맥이나 파르르 떤다.’는 봄의 역동적인 생명감과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5~9행은 앞의 시행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으면서 푸른 정맥의 푸른색의 이미지에 흰색의 이미지인이 겹치도록 하여 샤갈의 마을에 평화롭고 서정적으로 내리는 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라는 표현은 눈이 내리는 모습을 활유법으로 표현한 것이며, 즉 봄의 생명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어서 10~12행에서는 올리브 빛(녹색)의 이미지로 눈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봄의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쥐똥만 한 겨울 열매는 메마르고 옴츠렸던 열매이며, ‘올리브 빛은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반짝이는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13~15행에서는 붉은색의 의 이미지를 통해 겨울을 끝내고 새로운 생명이 다시 피어나는 새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눈 내리는 가운데 새봄이 다시 시작되는 계절의 변화를 방에 아낙들이 아궁이에 을 지피는 행위로 인격화하여 비유함으로써 봄이 주는 생명감과 활력을 돋보이게 한다.

 

 이 시는 김춘수 시인이 1960년대에 쓴 작품으로, 관념의 시를 주로 쓴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에 이르러 관념과 의미를 해체하고 대상이 갖는 순수한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무의미의 시를 쓰게 되는 시대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시기에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주로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신비스러움과 자연의 조화로운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각 행은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심상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포착하여 표현하였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에 나오는 샤갈의 마을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적 세계이다. 이런 세계를 배경으로 '''새로 돋은 정맥', '올리브 빛', '' 등의 이질적인 시어들은 모두 독자적인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순수하고 맑은 생명감이라는 공통적인 심상을 연상시켜 준다. , 시인이 샤갈의 그림을 보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순수한 심상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형상화하여 환상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작자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 경남 통영 출생.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서 인식의 시인으로 불린다.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1948), (1950), ()》』(1951), 인인(隣人)(1953),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 기타(打令調 其他)(1969)를 발간하였다. 특히 시집 타령조 기타는 언어 실험 기간을 거쳐 무의미 시로 넘어가는 전조를 보이면서 장타령의 가락을 끌어들이면서 현대문명 비판에 기울었으며,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친 경향을 보인다. 이후 시집 처용(1974), 김춘수 시전집(1976), 남천(南天)(1977), 해외 기행 시를 주축으로 한 시집 라틴 점묘(點描) 기타(1988), 연작 장시 처용 단장(1991) 등에서 일련의 무의미 시를 펼친다.

 

 산문시집 서서 잠자는 숲(1993)30여 년간 시도했던 무의미 시의 종착점에서 그간의 방법론적인 긴장을 풀고 자유롭게 시상을 전개하였다. 이후 시집 ()(1995), 들림, 도스토옙스키(1997), 의자와 계단(1999), 거울 속의 천사(2001), 쉰한 편의 비가(2002) 등이 있다.

 

 김춘수는 언어와 대상 간의 관계를 고민하고 그 해답을 얻기 위해 고투했던 시인이자 시 이론가였다. 그가 제시한 무의미 는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시문학사에 깊게 각인돼 있다. 특히 존재의 탐구, 대상의 즉물적 제시, 현실의 실감을 허무의 지로 승화시켰던 점에서 당대는 물론 한국 문학 미래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 박인환  (0) 2020.03.13
능금 / 김춘수  (0) 2020.03.13
꽃을 위한 서시(序詩) / 김춘수  (0) 2020.03.12
꽃 / 김춘수  (0) 2020.03.12
솔개 / 김종길  (0) 2020.03.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