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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꽃을 위한 서시(序詩) / 김춘수

by 혜강(惠江) 2020. 3. 12.

 

 

 

 

꽃을 위한 서시(序詩)

 

 

 -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 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

 

                               - <문학예술>(1957)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은 인식의 대상이자 존재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심오한 철학적 문제를 구체적인 시어를 사용하여 형상화함으로써 존재의 참모습을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을 노래한 작품이다.

 

 화자는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지만 끝내 알아내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대립적인 이미지의 시어를 통해 의미를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말 줄임표를 사용하여 여운을 주면서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1연에서 2인칭으로 표현된 대상인 ''은 사물(존재)에 내재한 본질에 해당된다. ''는 존재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하는 인식의 주체이다. 그러나 ''의 간절한 욕구와 시도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본질을 밝혀지지 않는다. ''가 존재의 본질을 포착했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다. 따라서 '''위험한 짐승'일 수밖에 없다. '위험한 짐승'은 존재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無知)한 존재인 인 것이다.


  2연에서 존재의 참모습으로서 꽃은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왜냐하면, 사물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사물을 인식하는 행위가 있어야 가능한데, 사물의 본질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끝이란 존재를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한 것이며,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이 인식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3연에서 ''는 사물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존재의 본질 탐구를 위한 노력을 안타깝게 계속한다. '무명의 어둠'은 존재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것이며,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 나는 한밤 내 운다.’는 것은 삶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존재의 본질을 알기 위해 노력하며 안타까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4연에서는 이러한 ''의 노력('울음')은 언젠가는 존재의 어둠으로 가득찬 세계를 '돌개바람'이 되어 떠돌다가 마침내 '석탑' 속의 ''에 응결된 ''처럼 소중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에 내재하는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노력은 비록 그것이 도달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노력 그 자체에 우리 삶의 실존적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탑을 흔들다가는 존재의 본질을 알기 위한 노력을 의하며, ‘은 존재의 본질을 알게 된 상태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5연에서 여기 있는 나에게 사물에 내재한 존재의 본질은, 마치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처럼 인식의 가능성 저편에 안타깝게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로 형상화되었다. 이 시에서 '''신부'는 시적 자아가 끊임없이 추구해 마지않는 존재의 본질을 상징한다.  ‘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존재 탐구를 향해 노력을 거듭하지만, 대상은 얼굴을 가리고 좀처럼 나에게 다가올 줄 모르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사물의 본질은 영원히 우리의 인식 저편에 불가지(不可知)의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식 주체의 노력은 끈질기며 의지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돌에 스미는 으로 상징되어 있다.

 

 이 시는 우리가 보통 보아온 시와 사뭇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 작품이다. 이런 시를 존재 탐구의 시라 부르고 있거니와, 시를 정서 표출의 과정으로 보기보다 그것 자체의 존재를 규정하는 진실한 세계로 보는 데서 창조된 작품이다.

 

 

작자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 경남 통영 출생.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서 인식의 시인으로 불린다.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1948), 꽃의 소묘(1959), 처용(1974), 쉰한 편의 비가(2002)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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