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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꽃 / 김춘수

by 혜강(惠江) 2020. 3. 12.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시와 시론》 (1952>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52시와 시론에 발표된 김춘수의 연작시 중 하나로, ‘을 제재로 하여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갈망과 진정한 인간관계 형성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누군가 자신의 본질에 맞는 이름을 불러 주기를 원하고 있으며, 사물의 존재 파악에서 나아가 서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와의 관계이다. 둘의 관계는 처음에는 무의미한 관계였다가 상호 인식의 과정을 거쳐 서로에게 이라는 의미 있는 존재로 변모하고, 마침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하면, 상대에게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그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 ‘의 이름을 불러 주면, ‘는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된 를 시인은 에게로 와서 이 된 것이라고 형상화하였다.

 

  이 시는 상징적 시어를 사용하여 주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호소하는 듯한 어조를 통해 화자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 존재의 의무 부여 대상인 인식의 주체를 중심으로 에서 , ‘에서 우리로 점층적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1연은 구체적인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의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에 는 의미 없는 무수한 사물 중 하나였다. 여기서 하나의 몸짓이란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의 막연한 상태, , 의미 없음을 나타낸다.

 

  2연에서 내가 대상을 인식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비로소 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름을 부를 때, ‘이라는 의미 있는 존재로 나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무의미하던 하나의 몸짓이 이름을 부른 후 의미 있는 이 되었다.

 

  3연에서는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열망이 나타나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빛깔과 향기는 존재의 본질이며,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는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 인식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꽃이 되고 싶다.’는 그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이다.

 

  4연에서는 시적 화자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이 우리로 확산되고 있다. ‘가 고립된 객체가 아니라 참된 우리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들 모두가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만 중심이 되거나 만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합일(合一)되어 서로가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되는 상호 주체적인 관계를 맺을 때 본질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될 때, 화자는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작자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 경남 통영 출생.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시화집 날개<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서 인식의 시인으로 불린다.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1948), 꽃의 소묘(1959), 처용(1974), 쉰한 편의 비가(2002)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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