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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솔개 / 김종길

by 혜강(惠江) 2020. 3. 12.

 

<출처 : 다음 불로그 '알키'>

 

 

 

솔개 -안동에서  

 

 

- 김종길

 

 

 

병 없이 앓는,

안동댐 민속촌의 헛제삿밥 같은.

그런 것들을 시랍시고 쓰지는 말자.

 

강 건너 임청각(臨淸閣) 기왓골에는

아직도 북만주의 삭풍(朔風)이 불고,

한낮에도 무시로 서리가 내린다.

 

진실은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성에 낀 창가에나 얼비치는 것,

선열한 육사(陸史)의 겨울 무지개!

 

유유히 날던 학 같은 건 이제는 없다.

얼음 박힌 산천에 불을 지피며

오늘도 타는 저녁노을 속,

 

깃털 곤두세우고

찬 바람 거스르는

솔개 한 마리

 

 

          - 달맞이꽃(1997) 수록

 

 

<시어 풀이>

 

*헛제사밥 : 제사를 지내지는 않지만, 제사 음식처럼 차려 먹는 밥. 깨소금, 간장 따위를 넣어서 비벼 먹는다. 

*임청각(臨淸閣) :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형 별당건축, 독립운동가 이상용의 거처

*삭풍(朔風) : 겨울철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

*성에 : 기온이 영하일 때 유리나 벽 따위에 수증기가 허옇게 얼어붙은 서릿발.

*선열한 : 선열다운, ‘선열(先烈)’이라는 명사를 형용사로 만들어 쓴 것. ‘선열(先烈)’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은 열사(烈士)’ 혹은 선조(先祖)의 공적

 

 

이해와 감상

 

 

  이 글은 창공에 높이 떠 지상을 굽어보며 유유히 날고 있는 솔개를 통해 지사적(志士的) 풍모를 지닌 선비 혹은 시인을 기리며 의연하고, 나아가 기품 있는 세계에 대한 열망하는 작품이다.

 

  화자는 가식적(假飾的)인 시 쓰기의 태도를 경계하며, ‘솔개와 같은 꿋꿋한 삶의 태도와 시 쓰기의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솔개'의 모습을 통해 지사적 풍모를 지닌 시인 이육사(李陸史)와 석주 이상룡(李相龍)과 같은 선열을 기리고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 '진실', '솔개', '육사'등의 상징적 시어가 담고 있는 선비 정신, 지사다움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화자가 비판하는 허위의식, 안일주의, 체면 등을 상징하는 시어로는 '헛제삿밥', '따뜻한 아랫목', ''등이 있다.

 

  이러한 대비적인 시어를 사용하여 시인이 예찬하는 대상과 비판하는 대상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주제 의식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남성적이고 단정적인 어조의 사용은 이러한 화자의 태도를 더욱 확연히 드러내 준다. , 따뜻함과 차가움의 촉각적 심상을 대비시키고, 계절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주제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1연은 가식적인 시 쓰기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다. ‘병 없이 앓는’ ‘헛제삿밥은 허세적, 가식적인 글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화자는 요즈음의 시들이 진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 손끝의 재주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런 호들갑을 떠는 시들을 화자는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지나친 수사는 짙은 화장처럼 진실을 은폐하게 되므로 감동이 약하고, 때로는 역겹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경계하고 있다. .

 

  2연은 독립운동을 펼쳤던 선열들의 매서운 정신을 상기시키고 있다. 임청각(臨淸閣)은 안동에 있는 고성 이씨 종택으로 500여 년의 긴 역사를 지닌 저택이다. 일제 치하에서 이상룡(李相龍, 1858~1932) 9명의 독립지사를 배출해 낸 선비 가문의 고택이다. 화자는 임청각을 바라다보면서 북만주의 삭풍을 헤치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선열들의 매서운 정신을 상기한다. 그들의 불굴의 정신을 한낮의 무서리로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왜 오늘날에는 그런 의기를 지닌 지사들이 없는가 하고 안타까워한다.

 

  3연에서는 시인 이육사의 시적 강인함과 치열한 시대정신을 그리워하고 있다. ‘따스한 아랫목에 앉아 있으면, 삭풍이 휘몰아치는 혹독한 바깥의 정황을 어찌 알 수 없다. 하다못해 성에 낀 창문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기라도 해야 짐작할 수 있으리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안주하는 시인들에 대한 경계다. 이어 화자는 선열다웠던 육사(陸史)의 곧은 정신을 떠올린다. ‘겨울 무지개는 육사의 시 <절정>의 마자막 행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를 연상한 것이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절정> 전문

 

  육사는 자리하고 있는 곳을 찬 바람 몰아치는 고원의 벼랑 끝으로 파악했다. 한 발짝 내디딜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이 위기를 강철로 된 무지개로 보면서 극복하고자 했다. 지금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강철처럼 혹독한 현실이지만 머지않아 무지개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믿음이다. 선열다운 육사의 곧은 정신을 만나게 된다. 화자는 안동 출신의 선열 시인 육사를 상기시키면서 의기의 소중함을 한결 강조하고 있는 장면이다.

 

  4연은 고고한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을 찾기 힘든 현실에 애태우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유유히 날던 학은 고귀한 정신세계를 지녔던 옛날의 선비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얼음 박힌 산천은 아직도 겨울의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거친 세상인데, 그 추위를 녹이고자 불을 지피는 지사는 없다고 한탄한다.

 

  마지막 5연은 불타는 저녁놀 속 깃털 곤두세우며 창공을 날고 있는 한 마리 솔개를 제시하고, 지사적 풍모를 지닌 시인(선비)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솔개의 찬 바람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당찬 기세를 본받고 싶다는 바람이 드러나 있다.

 

  어쩌면 그 솔개가 시대를 거슬러 의연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시인 자신임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도 같다. 더 나아가서는 시인의 고향 안동이 지닌 선비적 기상을 상징적으로 표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인 낙동강 강변 어귀에 위치한 안동은 시인의 고향이면서 이육사의 시 정신이 서려 있는 고장이다. 이육사생가와 이육사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또한 구국 항일 운동에 몸을 바쳤던 석주 이상룡의 고택(古宅)'임청각'이 건너다보이는 곳이 화자는 서 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해 볼 때 화자에게는 '솔개'와도 같은 선비 정신을 지닌 이육사나 이상룡의 의미가 '민속촌의 헛제삿밥 같은/ 그런 것들' 속에 묻히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자 김종길(金宗吉, 1926~2017)

 

 시인이며 영문학자. 경북 안동 출생. 본명은 김치규. 1947경향신문신춘문예에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일상생활의 주변에서 시의 소재를 얻으며, 열띤 감정이나 감상, 혼돈에 젖지 않는 당당한 시풍을 이룬다. 시집으로 성탄제(1969), 하회에서(1977), 황사 현상(1986), 해거름 이삭줍기(2008)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성탄제>, <고갯길>, <자전거>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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