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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랑 / 김수영

by 혜강(惠江) 2020. 3. 11.

 

 

 

 

사랑

 

 

-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 거대한 뿌리(1993)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풍부한 서정적 정감보다는 분석적이고 주지적인 시풍을 줄곧 유지했던 김수영 시인의 몇 안 되는 서정시 중의 대표적인 사랑 시이다. 그는 주로 감성보다는 지성에 토대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의 렌즈를 많이 써 온 시인이었기에 이 작품은 오히려 신선미를 느끼게 한다.

 

  그는 이 시에서 사랑의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 ‘어둠이나 불빛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은 마치 영원불변할 것 같지만, ‘번개처럼 환해졌다가 금세 어두워지는 불안한 속성을 동시에 지니는 사랑의 역설을 보여준다.

 

  39행으로 된 이 시는 시적 대상인 에 대한 반복과 변주를 통해 시상을 전개해 나가며,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1연에서 는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가르쳐 준 존재라면, 2연과 3연의 는 불안한 사랑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다. ‘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2연에서 바뀌면서 시상이 전환되고 있다.

 

  1연은 어둠이나 불빛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로 해서 배웠다며, 변치 않는 사랑을 노래한다. 그런데 시인은 너의 얼굴을 통해서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그 사랑이 불안한 것임을 인식한다. 화자는 너의 얼굴에서 찰나에 바뀌는 모습, 꺼졌다 살아나는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며 가변적인 사랑에 대해 불안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라는 존재가 불안함을 보여준다. 3연은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을 통해 불안한 사랑임을 확인한다.

 

  즉, 화자는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고 믿었지만, ‘의 얼굴을 통해 그것은 찰나에 꺼졌다 살아나는 번개처럼 불안한 것이라고 한다. , 사랑의 불변성과 불안함이라는 양극단의 모습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지만 결국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이라는 진술은 그 결과가 부정적임을 예측할 수 있다.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는 다음 연에 나오는 번개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형체가 있으면서도 금방 사라지고 또 한때는 밝기 그지없지만 금세 어두워지는 모순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의 얼굴은 그 번개를 닮아 금이 가 있다.

 

  이 시에서 는 사랑의 대상을 의미하지만, 이 작품이 쓰인 배경이 1961년임을 감안하면 그 대상을 ‘4·19 혁명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4·19 혁명이 가져다준 열광과 좌절을 그린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는 그의 다른 작품 <푸른 하늘을>에서 혁명이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라며, 그것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임을 시로 노래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사랑의 위대함을 찬미하거나 기린 작품이 아니고 사랑의 모순 또는 사랑의 행위가 갖는 비정스러움을 파헤친 주지시라고 할 수 있으며, 4·19 혁명의 전개와 훼손이라는 당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시인의 의식이 담겨 있다.

 

 

작자 김수영(金洙映 1921-1968)

 

 

  서울 출생. 연희전문 영문과 졸업. 북한 의용군에 강제 징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됨. 1945예술부락<묘정(廟廷)의 노래>로 등단. 1948년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행하여 모더니스트로 출발함.

 

  그러나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발간함으로써 문학에 있어 안이한 서정성의 배격과 지식인의 회의(懷疑), 방황, 좌절, 고뇌 등이 깊이 새겨진 참여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 유고시집으로 거대한 뿌리(1974), 사랑의 변주곡(1988) 등이 있음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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