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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파밭 가에서 / 김수영

by 혜강(惠江) 2020. 3. 10.

 

 

 

 

파밭 가에서

 

 

 - 김수영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石鏡)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 자유문학(1960)

 

 

<시어 풀이>

 

석경(石鏡) : 유리로 만든 거울.
조로 : 물뿌리개, 포르투갈 어인 조로(jorro)’에서 유래한 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새싹이 흙을 뚫고 나오는 파밭을 통해, 과거의 묵음 것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것(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역설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화자는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고 묵은 사랑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희망하면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묵은 사랑과 연결되는 시구는 잃는 것이고 새로운 사랑과 연결되는 시구는 얻는다는 것이다. , 화자는 새로운 사랑을 얻는다는 것이 묵은 사랑에 대한 집착과 미련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깨달으며 새로운 사랑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표현상으로 이 시는 각 연이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붉은 파밭, 푸른 새싹의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조적인 시각적 이미지(색채 대비)는 관념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하여 대조함으로써 주제 의식을 강화하고, 문장 구조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면서 화자의 정서를 강조한다. , ‘~보아라의 명령형 어미와 단정형 종결어미 것이다를 사용하여 주제와 화자의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각 연에서 반복되고 있는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라는. 구절은 이 시에서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구절이다.

 

 1연은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새로운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묵은 사랑은 표면적 의미 그대로 과거의 사랑으로 볼 수 있지만, 현시대의 낡은 사고, 가치, 버려야 할 사회적 관습이나 개인의 나쁜 버릇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묵은 사랑을 떨쳐 내어 얻을 수 있는 푸른 새싹또한 새로운 사랑, 이상적인 가치나 사회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상이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에 집중되어 있다.

 

 2연은 묵는 사랑이 움직일 때 새로운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여 묵은 사랑에 대한 추억을 떨쳐 내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3연은 너의 그림자1연의 묵은 사랑의 비유적 표현으로, 삶은 계란.의 껍질’(1)새벽에 준 조로의 물’(3)과 갚은 이미지로 연결된다.

 

 3연은 묵은 사랑이 젖어 있을 때 새로운 사랑을 얻는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통하여 묵은 사랑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묵은 사랑삶은 계란의 껍질처럼 벗겨지고, ‘너의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새벽에 준 조로의 물처럼젖어 있을 때, 화자는 과거의 자신을 뉘우치며, ‘묵은 사랑을 떨쳐 내고 새로운 사랑을 얻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 다짐이 마지막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로 반복, 집약되어 주제를 강조하면서 시는 마무리된다.

 

 새로운 사랑을 향한 화자의 의지는 아마도 이 시가 쓰인 우리의 현실을 배경으로 할 때, 아직 이루지 못한 통일일 수도 있고, 완전한 자유의 실현일 수도 있고, 기계문명 속에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일 수 있다. 이러한 염원을 가지고 묵은 사랑에서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자가 바라는 새로운 사랑그것은 바로 푸른 새싹이며, ‘통일이며, ‘자유이며, ‘인간 회복의 길인 것이다.

 

 

작자 김수영(金洙映 1921-1968)

 

 

  서울 출생. 연희전문 영문과 졸업. 북한 의용군에 강제 징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됨.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廷)의 노래>로 등단. 1948년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행하여 모더니스트로 출발함.

 

  그러나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발간함으로써 문학에 있어 안이한 서정성의 배격과 지식인의 회의(懷疑), 방황, 좌절, 고뇌 등이 깊이 새겨진 참여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 유고시집으로 《거대한 뿌리》(1974), 《사랑의 변주곡》(1988) 등이 있음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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