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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풀 / 김수영

by 혜강(惠江) 2020. 3. 10.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창작과 비평(1968)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김수영 시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하기 직전에 발표한 유작(遺作)으로, 나약한 속성을 지니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을 제재로 하여 고통을 받고 살아온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의 화자는 이 온갖 시련 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바람의 대립적인 구조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 시에서의 은 나약한 존재이며, 반면 바람은 풀 굴복시키려는 존재를 상징한다. 따라서 은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권력자에게 억압받으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맞서 싸워 온 민중, 민초(民草)를 뜻하며, 이와 반대로 바람은 풀의 생명력을 억누르는 세력, 곧 민중을 억압하는 사회적 힘, 독재 권력과 외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시상 전개 구조를 보면 1연과 2, 3연이 상호 대조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계속되는 반복과 대구를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눕다일어나다’, ‘울다웃다의 네 가지로 나타나는데, 이 행위들은 의 끈질긴 생명력을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대립 구조의 반복은 리듬감을 형성하고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주제를 한층 강화하여 보여 주는 데 이바지한다.


  1연에서는 풀의 나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2연에서는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의 적극적· 동적 모습이 제시된다. 민중들이 시대 상황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면모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면모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이어 3연에서는 한층 더 나아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뿐 아니라 바람보다 먼저 웃을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의 속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 이 시는 폭력적인 시대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권력에 짓밟히는 듯 보이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나약한 힘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고통을 이겨 내는 민중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화자는 바람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민중의 건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그림으로써 암울한 시대 상황과 권력의 횡포를 지혜롭게 견뎌내는 민중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참여시의 성격을 띤다.

 

 

작자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시인. 서울 출생. 1947년. 그의 문학 활동은 1945년 문예지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 뒤 김경린·박인환·임호권·양병식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 주목을 받았다. 이때는 모더니스트의 일반적 경향인 현대문명과 도시 생활을 비판적으로 노래했으나, 서구 사조를 뒤쫓는 일시적이고 시사적인 유행성에 탐닉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전진로를 개척하려 했다는 점에서 서구 취향의 모더니스트의 자기 극복 과정을 보여준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모더니스트들이 지닌 관념적 생경성을 벗어나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겪어야 했던 지적 방황과 번민을 풍자적이며 지적인 언어로 시화하였다. 1959년에 간행된 ≪달나라의 장난≫은 이 시기의 시적 성과를 수록한 첫 개인시집이다. 대표작으로는 〈달나라의 장난〉, 〈헬리콥터〉, 〈병풍〉, 〈눈〉, 〈폭포〉 등을 꼽을 수 있다.

 

  그가 본격적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은 1960년 이후다. 강렬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 정신에 뿌리박은 그의 시적 탐구는 1960년대 참여파 시인들의 전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의 대표작품으로 〈푸른 하늘을〉, 〈강가에서〉, 〈거대(巨大)한 뿌리〉,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풀〉을 들 수 있다. 그는 현실의 억압과 좌절 속에서 일어서고자 하였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이며 현실참여의 생경하지 않은 목소리를 보여줌으로써 1970년대는 물론 1980년대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시집으로 《달나라의 장난》(1959) 외에 죽은 뒤 출판된 ≪거대한 뿌리≫(1974),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6)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 ≪퓨리턴의 초상≫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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