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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정념(情念)의 기(旗) / 김남조

by 혜강(惠江) 2020. 3. 9.

 

 

 

 

정념(情念)의 기()

 

 

- 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

그것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 드린다.

 

                                        - 정념의 기(1960)

 

 

<시어 풀이>

 

정념(情念)온갖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
항서(降書)항복을 선언하고 항복에 대한 여러 조건 따위를 정한 문서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화자의 마음을 ()’에 비유하여 마음속에 움직이는 갈등, 번민을 넘어서서 영혼의 순수함과 평화를 얻고자 하는 순수한 삶에 대한 열망과 종교적 기원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인 는 눈 오는 네거리에서 눈길을 바라보며, 삶의 번뇌를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소망으로 기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화자는 시행을 자유롭게 배열하면서도 유려(流麗)한 리듬을 살리고 있으며, 구체적 사물을 통해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 섬세하고 애상적이며 여성적인 어조로 건건하고 순수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1연은 고민하고 번뇌하는 존재로서의 화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내 마음은 한 폭의 기은유로 표현된 짤막한 말속에는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혼란한 마음의 상태가 담겨 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라고 하여 고독한 존재로 과거로부터 그 모습을 지니고 살아왔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어 2연은 마음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마음의 평안을 찾으러 눈 오는 네거리로 나간다고 한다.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는 화자가 한 인간으로서 겪는 번민과 갈등, 혹은 신에 대한 회의 등으로 내면적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3연은 눈길을 보며 느끼는 마음의 평화를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대지를 환하게 덮고 있는 을 보며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 즉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화자에게 은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게 하는 깨달음의 소재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혼란한 마음의 상태였던 마음의 기를 향하여 눈의 음악을 듣고 있느냐고 넌지시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4연은 경건한 삶에 대한 화자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 소망은 바로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그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일몰은 사멸의 이미지로 곧 죽음을 상징한다. 그것이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번민과 갈등을 고요하게 다스리고 내면의 평화를 성취하는 일이며 그것이 화자가 소원하는 건강한 삶이라고 한다. ‘그 일이란다를 한 행으로 바꾸어 표현한 것은 건강한 삶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5연은 순수한 삶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세상에서 도저히 참기 힘든 슬픔과 서러움을 정화한, ‘하얀 모래 벌 같은순수한 마음씨의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순수의 삶을 표현했다.

 

  6연은 깨달은 자가 얻은 마음의 평화가 그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1연의 내 마음은 한 폭의 기와는 표현은 같으면서도 나타나는 심리적 상태는 정반대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7연은 경건한 삶에 대한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마무리를 짓고 있다. ‘보는 이 없는 시공같은 세상에서 인간적인 번뇌 때문에 때로 오열하며 번민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마음속의 갈등, 번민을 넘어서서 경건하고 순수한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소망은 개인적 차원에서 인간, 그리고 신에게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어 생명의 힘으로 이어져, 독자에게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 준다.

 

 

작자 김남조(金南祚, 1927 ~ )

 

 

 시인. 대구 출생. 1950연합신문성숙’,‘ 잔상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진솔한 자기 삶의 증언과 묘사를 통해 인간의 삶과 사랑을 그리는 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목숨(1953), 겨울 바다(1967), 설일(1971),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겨울 바다(1967), 귀중한 오늘(2007), 사람아, 사람아(2020) 등이 있다.

 

 작자의 시 세계는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치는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쓰인 것으로, 목숨(1953), 나아드의 향유(1955), 나무와 바람(1958)이 있다. 중기 시는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생명력을 확산하는 시기로, 정념의 기(1960), 풍림의 음악(1963), 겨울 바다(1967) 등이 있다. 후기 때는 바람 세례를 기점으로 하는 작품들로, 죽음과 생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주제가 되고 있다.

 

  정념의 기는 작자의 중기 시에 해당하는 시집이다. 이 시기에 작자는 사랑의 정념과 관능, 외로움과 갈망 등 사랑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정념의 기>에서 작자는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 보는 이 없는 시공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라고 고백함으로써 이 시집의 주류가 되는 사랑을 향한 갈망과 고뇌를 표출한다. <너에게>, <후조(候鳥)>, <마지막 장미> 등에도 사랑의 갈망과 고뇌가 잘 드러난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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