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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폭포 / 김수영

by 혜강(惠江) 2020. 3. 10.

 

 

 

 

 

폭포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 평화에의 증언(1957)

 

 

<시어 풀이>

고매한 : 인격이나 품성, 학식, 재질 따위가 높고 빼어난.
금잔화 : 국화과의 한해살이 꽃.
나타(懶惰) : 나태. 행동, 성격 따위가 느리고 게으름.

 

 

이해와 감상

 

 

 폭포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수직으로 곧게 떨어지는 속성을 지닌 것으로, 이러한 폭포의 속성을 통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고매한 정신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지적 인식과 정신을 자연물에 효과적으로 투영하여 부조리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의지적 삶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폭포라는 자연물을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데, 반복에 의한 강조의 방식이 사용되었다. ‘곧은 소리떨어진다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바르고 진실된 양심의 소리가 확대되기를 바라는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떨어진다의 반복은 4연 이외의 모든 연에서 각운의 효과를 주어 음악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 감각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대상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연은 폭포의 외형적 모습에 대한 묘사를 통해 이 시의 전체 내용을 개관하여 제시하고 있다. 부정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를 형상화하고 있다. ‘곧은 절벽은 불굴의 의지와 신념의 이미지이며, ‘무서운 기색도 없이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두려움 없이라는 뜻이다.

 

 2연은 1연에서 제시한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에 화자가 지향하는 고매한 정신적 가치를 부여하여 표현한 것이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은 폭포의 힘찬 물줄기로 자유의 이미를 뜻하며, ‘고매한 정신은 현실적 효용이나 세속적 욕망 따위의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일체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인간의 정신적 지향을 나타낸다.

 

 3, 4연은 곧은 소리를 내며 선구자적 행동을 하는 폭포를 형상화하고 있다. 폭포는 화자가 처한 현실적 상황을 비유하고 있는을 뚫고 떨어진다. 금잔화, 인가로 표현된 소박한 아름다움이나 평화로움 삶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리고 곧은 소리는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는 소리이며,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양심의 소리이며, 그것은 또 다른 곧은 소리를 불러일으키는 자기희생적 선구자의 소리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5연은 역설적 표현을 통해 나태와 안정을 거부하는 절대적 자유로움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끝맺고 있다.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는 흠뻑 빠져들거나 음미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라는 표현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폭포가 지향하고자 하는 정신, 곧 부정적 현실에 안주하는 소시민적이고 안이한 삶의 태도, 나타(懶惰)와 안정 과감히 거부하고 절대적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치열한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폭포를 통해 부정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저항 정신을 형상화한 것인데, 4·19 혁명이 일어나기 전 부조리한 사회상을 배경으로 쓰인 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시인은 부조리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롭고 진실한 양심의 외침이 끊임없이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시를 창작했음을 알 수 있다.

 

 

 

작자 김수영(金洙映 1921-1968)

 

 

  서울 출생. 연희전문 영문과 졸업. 북한 의용군에 강제 징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됨.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廷)의 노래>로 등단. 1948년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행하여 모더니스트로 출발함.

 

  그러나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발간함으로써 문학에 있어 안이한 서정성의 배격과 지식인의 회의(懷疑), 방황, 좌절, 고뇌 등이 깊이 새겨진 참여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 유고시집으로 《거대한 뿌리》(1974), 《사랑의 변주곡》(1988) 등이 있음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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