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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고갯길 / 김종길

by 혜강(惠江) 2020. 3. 11.

 

 

 

 

 

 

고갯길

 

 

  - 김종길

 

 

 

시골 옛집 앞을 지나

뒷산 등성이를

 

오늘은 상여(喪輿)로 넘으시는 아버지.    

 

낯익은 고갯길엔

마른풀 희게 우거졌고                              

 

이른 봄 찬 날씨에

허허로운 솔바람 소리.                            

 

-아버지,

생전(生前)에 이 고갯길을 몇 번이나

숨차시게, 숨차시게 넘으셨던가요?

 

 

이해와 감상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절제된 언어와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짧고 간결한 언어 표현과  서리를 뒤집어써 하얗게 우거진 마른풀의 모습, 차가운 봄 날씨, 허허로운 솔바람 소리 등의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아버지를 잃은 화자의 슬픔을 잘 드러내고 있다.

 

​  시에는 현란한 어휘나 특별한 표현 기교가 없다. 그저 아버지의 상여를 따라 고갯길을 오르다가 문득 아버지를 생각하는 솔직한 마음만 그려져 있다. 그런 소박한 화자의 마음이 오히려 독자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1, 2연은 아버지의 상여가 떠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평생 살아오던 삶의 터전을

시골 옛집을 지나/ 뒷산 등성이를이라는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였지만, 이 말속에는 평생 살아온 일생 희로애락의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평생 오르내리던 그 길을 오늘은 상여로 넘으신다에서 오늘은이라는 말이 아버지의 죽음에 임한 슬픔을 강조한다.

 

  3, 4연은 고갯길을 오르다 보니 낯익은 고갯길엔/ 마른풀 희게 우거졌고// 이른 봄 찬 날씨에/ 허허로운 솔바람 소리만 들린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추운 날, 새싹이 돋기 전이므로 가을에 져버린 풀들이 희게우거졌다는 것은 그만큼 늙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른풀희다는 소멸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게다가 바람 소리가 허허로운것은 시 속 화자의 마음이기도 하다.

 

  마지막 5연은 고달프게 사셨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4연까지는 그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상여로 모시며 산길을 오르는 장면을 그려 크게 감정이 드러나지 않지만, 5연에 와서 생전에 고생했을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 생전(生前)에 이 고갯길을 몇 번이나/ 숨차시게, 숨차시게 넘으셨던가요?’라는 화자의 독백은 아들딸 먹여 살리려고,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어렵게 사셨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숨차시게, 숨차시게두 번 반복한 것이나 얼마나 고생을 하셨나요의 설의적 표현은 고생의 정도를 강조한 것이다.

 

  이를 생각하는 화자나 자녀들 역시, 숨이 찼을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며 또한 숨차게 고갯길을 넘었으리라. 아버지의 상여를 따라 오르다가 가파른 고갯길에 숨이 차오며 문득 그 고갯길을 수없이 넘었을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는 아들. 어찌 울컥하지 않겠는가.

 

  이 작품 역시, 그의 대표작인 <성탄제>와 마찬가지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를 제재로 삼은 점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유교적 효() 사상이 작품 저변에 깔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작자 김종길(金宗吉, 1926~2017)

 

 

  시인이며 영문학자. 경북 안동 출생. 본명은 김치규. 1947경향신문신춘문예에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일상생활의 주변에서 시의 소재를 얻으며, 열띤 감정이나 감상, 혼돈에 젖지 않는 시풍을 이룬다. 시집으로 성탄제(1969), 하회에서(1977), 황사 현상(1986), 해거름 이삭줍기(2008)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성탄제>, <고갯길>, <자전거> 등이 있다.

 

  성탄제는 극심한 고통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린 화자에게 도움을 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어른이 되어 깊이 회상하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며, 고갯길은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절제된 언어와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짧고 간결한 언어 표현과 서리를 뒤집어써 하얗게 우거진 마른 풀의 모습, 차가운 봄 날씨, 허허로운 솔바람 소리 등의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아버지를 잃은 화자의 슬픔을 잘 드러내고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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