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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십자가(十字架) / 윤동주

by 혜강(惠江) 2020. 2. 27.

 

 

 

 

 

 

십자가(十字架)

 

 

- 윤 동 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시어 풀이>

 

첨탑(尖塔)지붕 꼭대기가 뾰족한 탑, 또는 그런 탑이 있는 건물
모가지의 속된 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암울한 시대를 무기력하게 사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방황과 고뇌를 자기희생의 숭고한 의지로 극복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십자가로 형상화하여 보여 주고 있다.


 1연은 부정적 현실 상황을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자기가 추구하던 삶이 한계 상황에 부딪혔음을 고백하고 있다. ‘햇빛은 화자에게 있어서 삶의 목표가 되는 희망이요 이상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관습적 의미인 기독교의 상징물로, 시적 화자가 도달하기 어렵다고 절실히 느끼면서도 동경하는 종교적 · 도덕적 삶의 지표를 상징한다.

 

 2연에서는 시적 화자가 첨탑이 높아서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추구하는 삶의 목표(이상)와 현실과의 거리감을 나타내고 있다. 설의법을 통해 시적 화자가 인식한 현실 상황에 대한 독자의 동의를 구함으로써 시적 화자와 독자와의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3연에서는 절망적 현실 상황 속에서 화자가 겪고 있는 방황과 고뇌를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종소리는 좋은 소식, 즉 희망을 알리는 소리인데, 종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고 한다. 시대 상황이 암울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린다. 희망 둘 곳이 없어 방황한다.

 

  그런데 4연에 와서, 시적 화자는 이제까지 보였던 소극적인 태도에서 자기희생의 삶을 살겠다는 소망을 드러낸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한 자기 희생처럼 자기도 그런 삶을 선택하겠다는 뜻이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예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이 구절은, 역설적 표현을 통해 괴로움과 행복을 동시에 지닌 예수와 자신을 대비시켜 암울한 시대를 넘어서는 화자의 소망를 보여준다. ‘십자가가 시적 화자를 소극적 자아에서 자기 희생을 감수하는 적극적 자아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지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자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북간도 출생.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참회록> <십자가> <또 다른 고향>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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