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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바위 / 유치환

by 혜강(惠江) 2020. 2. 25.

 

<사진 : 유치환 시인의 '바위' 시비- 홍성 민족시비공원 >

 

 

 

바위

 

 

 

-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愛隣)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삼천리(1941)

 

 

<시어 풀이>

애련(愛憐): 가엾이 여겨 따뜻한 정을 베풂.
비정(非情) : 인간다운 감정을 가지지 않음.
함묵(緘默) :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아니함.
원뢰(遠雷) : 멀리서 울려 퍼지는 천둥 소리.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자연물인 바위를 소재로 하여 현실 초극적인 삶을 추구하는 태도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바위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단호하고 의지적인 남성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1행에서 화자는 바위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바위는 감정이나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초월적 존재로서 강인한 정신과 의지의 표상이자,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은 역설법으로 이상 세계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강조한다.

 

 2~3행에서 바위는 애련 즉 사랑과 연민 등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희로, 즉 기쁨과 노여움에도 움직이지 않겠다 한다. 4~6행에서는 이런 의지를 억년 비정의 함묵이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오직 내면적 성찰과 단련(내적 수련)에만 몰두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7~9행에서는 구름원뢰로 표현되는 외부의 자극이나 유혹 등의 가변적 대상을 멀리한 채, 10~12행에 와서는 자신이 꿈꾸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현실적 좌절에도 고통을 토로하지 않는, 즉 인간적인 감정과 외부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극적인 삶을 소망하고 있다. 마지막 행에 와서 화자는 1행의 바위가 되리라라는 거듭된 말로 바위와 같은 삶에 대한 소망을 반복하면서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 처음과 마지막 행을 유사한 구조로 배열함으로써 초극적 삶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유치환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 문학사에서 허무와 의지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유치환이 추구하는 허무는 현실적인 삶에서 인간이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든 것들, 즉 감정이나 생명에 대한 집착과 구속 같은 것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시의 바위를 통해서 드러나는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생명의 망각은 그러한 경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의 허무는 모든 것을 덧없다고 보는 허망함이 아니라 그 바탕에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깔고 있는 허무이다. , 그는 사람의 삶 어디에나 있는 뉘우침, 외로움, 두려움, 번민 등의 일체로부터 벗어난 어떤 절대적인 경지를 갈구했으며, 그 해결의 길을 일체의 생명적인 것에 대한 허무주의적 자각에서 찾은 것이다. 결국, 그에게 허무 의식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현실 초극적인 삶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작자 유치환(柳致環, 1908~1967)

 

 

 시인. 경남 통영 출생. 호는 청마(靑馬). 《문예월간》(1931)에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생명에 대한 열정을 강렬한 어조로 노래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동양적인 허무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원시적인 의지도 보였다. 그의 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허무와 애수이며, 이 허무와 애수는 단순히 감상적이지 않고 이념과 의지를 내포한다.

 

  시집에는 《청마시초》(1939), 《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예루살렘의 닭》(1953),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보병과 더불어》(1960), 《미류나무와 남풍》(1964)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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