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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깃발 / 유치환

by 혜강(惠江) 2020. 2. 25.

 

 

 

 

 

깃발

                           

 

 

- 유 치 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 조선 문단(1936)

 

 

<시어 풀이>

 

해원(海原) : ‘넓은 바다를 뜻하는 일본식 한자어.
노스탤지어(nostalgia) :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애수(哀愁) :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슬픈 시름.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깃발을 소재로 하여, 유한한 인간이 이상향(초월적,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을 노래한 작품이다. 여기서 이상 세계는 푸른 해원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상 세계를 지향하는 화자의 모습은 깃발로 상징되어 있다. 그리고 이상 세계로 갈 수 없는 한계 상황은 푯대에 깃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의지적, 상징적 성격을 지니는 이 시는 시어 사용의 철저한 절제, 역설과 은유 및 직유와 도치, 그리고 영탄 등의 다양한 표현 기교를 구사하여 중심 대상인 깃발이 갖는 이미지를 선명하고도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소리 없는 아우성,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 애수, 애달픈 마음등은 모두 깃발의 보조 관념으로서 이들을 연속적으로 제시하여 이미지의 전개가 중첩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 작품의 구성은 내용으로 보아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단락(13)은 도입부로 깃발의 역동적인 모습을, 두 번째 단락(46)에서는 깃발의 순수한 열정과 애수를, 세 번째 단락(79)에서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좌절에서 오는 비애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향은 푸른 해원즉 바다이다. ‘깃발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푸른 해원을 향해 처절하도록 줄기차게 나부끼는 모습으로 보고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 그것이다. 이것은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을 추구하는 화자의 몸짓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이상을 향해 동경의 끈을 놓지 않는 깃발을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성과 모순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상향을 향한 깃발의 동경은 순정이 되는데, 이 순정이 이념의 푯대 끝에서 백로처럼 날개를 펴는 애수로 변한다. 여기서 깃발은 이상향에 집착하는 의지력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결국 좌절의 비애로 귀결되고 만다. 그래서 화자는 슬프고 애달픈 음의 깃발을 누가 맨 처음 공중에 달았느냐고 묻는다. 이것은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이 시는 시인이 지니고 사는 높은 이념이 외롭고 애달프다는 것을 현실과 이상, 좌절과 염원을 대응시킴으로써 더욱 확연하게 표현하였다. 그런데,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의지가 비애와 좌절로 귀결되면서도 생명에 대한 연민과 강한 애착 같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하여 깃발의 본래의 형태를 자신의 독특한 주관으로 해석하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의 실현을 갈구하는 마음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 : 유치환의 '깃발' 시비 - 통영 남망산공원>

 

                           

작자 유치환(柳致環, 1908~1967)

 

 

 시인. 경남 통영 출생. 호는 청마(靑馬). 문예월간(1931)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생명에 대한 열정을 강렬한 어조로 노래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동양적인 허무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원시적인 의지도 보였다.

 

 그의 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허무와 애수이며, 이 허무와 애수는 단순히 감상적이지 않고 이념과 의지를 내포한다. 시집에는 청마시초(1939), 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보병과 더불어(1960) 등이 있다.

 

 그는 개성 있는 독특한 언어로 인간과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존재의 더 높은 차원을 제시하며 한국 현대 시사에 생명파로서의 위치를 굳게 확보한 시인이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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