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川上)에 서서
- 박 재 륜
산다는 것은 흐르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바라보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듣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느끼는 것이다.
흐름이 계곡을 흐르듯
목숨이 흐름 되어
우리들의 살을 흐르는 것이다.
우리들의 뼈를 흐르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것을 깨닫는 것이다.
흐름이 계곡을 흐르듯
목숨이 흐름되어
우리들의 살을 노래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뼈를 우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귀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것을 눈여겨 바라보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흐르는 것이다
ㅡ 《궤짝 속의 왕자》(1959)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인간의 삶을 도도하게 흐르는 물과 동일시하여 물의 흐름을 통해서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서정시다. 어조가 쉽고 평이하나 중후한 인상과 함께 누구에게나 쉽게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원시의 작품 속에는 논어의 자한편(子罕篇)에 있는 구절 “선생님이 냇가에서 말씀하시기를 지나가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라, 밤낮없이 멎지 않는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가 실려있다. 시인은 동양의 학자들이 터득한 삶의 지혜로 생을 바라보듯, 그 자세가 매우 관조적이다.
이 시의 골격은 첫 행과 마지막 행에서 중복하여 제시한 “산다는 것은 흐르는 것이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정적인 표현은 도도한 물의 흐름을 보면서 생을 포괄적으로 파악하였다는 표현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영원회귀(永遠回歸)의 과정에 따라 흘러가는 일이다. 흐르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기도 하고, 흘러가는 소리를 듣기도 하며,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매 시행이 ‘∼것이다’의 종지법으로 반복되면서 그것이 독특한 운율을 형성시킨다. 그 솎엔 인생을 살아가면서 터득한 자의 고귀한 진리가 배여 있다. 시간을 물을 통해 시각, 청각, 감각화하여 환치해 놓음으로써 인생과 물의 흐름이 동일시되고 있다.
또, 물의 흐름이 험준한 계곡을 흐르면서 때로는 고난을 맞이하듯이, 우리들의 고귀한 생명도 험준하게 흐르는 물처럼 되어, 우리들의 아픈 ‘살(슬픔)’의 계곡을 흘러가기도 하고, 우리들의 아픈 ‘뼈(통곡)’를 감돌아 흐르기도 한다. 우리들은 그렇게 흘러가면서 그것들을 또 깨닫는 것이다. ‘살, 뼈’는 ‘슬픔, 통곡’ 등의 정한(情恨)을 함축하고 있는 말들이다. 생의 긴 여정에서 우리는 더러 아픈 살과 뼈의 계곡을 감돌아 흐르고, 또 그것들을 깨닫고 산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생의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슬픔’과 ‘통곡’은 우리들의 시에서 노래가 되어야 하고, 또한 승화되어야 항 거을 노래한다. 시인의 인생적 태도가 반영된 대목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두 행은 인생을 산다는 것이 흐르는 것에 불과하다고 다시 강조한다. 그렇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그러한 노래를 귀 기울여 듣기도 하고, 눈 여겨 보아야 하리라.
▲작자 박재륜(朴載倫,1910~2001 )
충주 출신,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0세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학우들과 동인지 《네바다》를 발간하고, 교지 《휘문》의 편집에 참가하였다. 1930년 《조선지광》과 《신여성》》을 통해 등단하여 1940년까지 활발히 시작 활동을 하였다.
《궤짝 속의 왕자》(1959), 《메마른 언어》(1969) 등 초기시집에서는 개성적인 조형의 세계를 추구하면서 감정을 절제한 견고한 언어의 구성으로 다듬어진 주지적 모더니즘 경향을 보이다가, 1972년 출간된 《전사통신》을 발행하면서 고향의 자연을 소재로 한 전원시들을 많이 지었다. 그의 대표작 <남한강>으로 ‘남한강 시인’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 외에 《인생의 곁을 지나서》(1978), 《흰 수염 갈대풀》(1981), 《천상에 서서》(1982)』 등 시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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