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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꽃나무 / 이상

by 혜강(惠江) 2020. 2. 22.

 

 

 

꽃나무

 

- 이 상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근처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나는막달아났소.한꽃나무를위하야그러는것처럼나는참고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 카톨릭 청년(1933)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비이성적, 비논리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자유로운 연상 작용으로 기술된 산문시이다. 띄어쓰기의 무시, ()과 행()의 구분을 배제함으로써 기존 시의 틀을 벗어난 것이다. 반이성(反理性)에 입각한 역설적인 기법을 사용하였다.

 

 난해한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꽃나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상으로 생각하는 꽃나무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서정의 대상이지만, 이 시의 꽃나무는 의식(意識)을 가지고 있는 사물이다. 시인의 자의식을 투영한 것으로 시적 화자와 동일시한 것이다.

 

  이 시에는 두 개의 꽃나무가 나온다. 하나는 벌판 한복판에 있는 꽃나무이고, 또 하나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이다 모두 6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자아의 상황 설정(1, 2행) > 두 자아의 통합 노력(3행) > 자아 통합의 불가능 인식(4행) > 자아 분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5행)> 좌절과 허탈상태(6행)" 로 전개된다. 

 

 시의 상황을 장면을 설정하여 그려 보자. 꽃나무로 표상된 일상적 또는 현상적 자아는 또 다른 자아, 즉 본질적 또는 이상적 자아와 분리되어 있다. 이상적(본질적) 자아를 들여다보는 현상적(일상적) 자아의 자의식은 절망감에 젖어 있다. 즉 이상적 자아에 다가갈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단절 의식이 자아의 분열이다. 그래서 분열된 자아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는 꽃나무가 다른 꽃나무에 통합하지 못하듯이 나 또한 다른 나에게 통합하지 못함을 알고 달아난다. 자아의 통합을 꿈꾸면서도 이상적 자아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의기소침, 그 소외의 간격이 주는 심리적 부담감을 떨치기 위해 이상스런 흉내를 낸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통합을 이루지 못한 데서 오는 좌절을 꽃나무를 통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19세기를 청산해야 할 과거로 생각하면서도 19세기에 머무르고 있는 이상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때문에, 그의 자아는 시에서 언제나 분열과 두려움에 처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아닐까?  결국, 이 시는 현상적 자아가 이상적 자아를 지향하지만 통합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분열된 자아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식(혹은 도피) 현상을 반영한 작품이라 하겠다.

  

작자 이상(李箱, 1910-1937)

  시인이며 소설가. 서울 출생.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경성고등공업 졸업.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사로 있으면서 처녀작 <이상한 가역 반응> <파편의 경치> 등을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했다. 1933년 김기림, 이효석, 박태원, 정지용, 이상 등 9명의 문인으로 구성된 9인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시 <오감도>를 신문에 연재하다 독자들의 비난 때문에 중단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 <오감도>(1934), 소설 <날개>(1936), <종생기>(1937), <실화>(1939) 등이 있고 수필레 <권태>가 있다. 폐결핵 환자로서 건강을 돌보지 않는 생활을 하다 일본에서 요절하였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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