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김현승 시초》(1957)
<시어 풀이>
*옥토(沃土 : 비옥한 땅,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자리이며, 절대자의 뜻을 깨닫는 마음의 자리
*나아종 : 나중. 마지막.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시인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먼저 죽음의 세계로 보낸, 상명지통(喪明之痛) 비극적인 상황에서 쓴 것으로, 자신이 겪은 슬픔을 기독교적 신앙으로 극복, 승화시키고 있다. 자식의 죽음에서 흘린 눈물을 제재로 하여, 슬픔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순결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독교적 서정을 주로 읊은 김현승 시인의 제2기 작품이다.
이 시는 시인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먼저 죽음의 세계로 보낸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그 아픔과 슬픔을 종교적 믿음으로 견디면서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통해, 우리 인간은 기쁨보다는 슬픔 속에서 성숙한다는 인간의 삶에 내재된 역설을 깨닫는다. 경어체를 사용함으로써 시를 경건한 분위기로 말들어 가고 있다..
모두 6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눈물'에 대해 경어체로 말함으로써 시의 분위기를 경건하게 만든다. 1연에서는 자식을 잃고 흘리는 '눈물'은 슬픔이 아닌, 부활을 준비하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임을 말한다. 눈물의 보조 관념으로 사용된 ‘작은 생명’은 옥토에 떨어져 싹을 틔우는 맑고 깨끗한 씨앗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눈물'은 그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서, 희생을 통한 부활의 씨앗으로서의 '생명'을 나타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연에서는 온전하고 순수한 것으로서의 '눈물'을 노래한다. “흠도 티도 없는/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이라는 표현은 눈물의 순수성을 예찬하는 동시에 눈물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된다. 3~4연은 내용상 하나로 결합하여 2연의 내용이 점층적으로 표현된다. 곧 ‘눈물’은 절대자인 신에게 제물을 드린다면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이라며 절대 순수로서의 ‘눈물’을 거듭 강조한다.
이처럼 1~4연에서 눈물의 순수성과 가치를 말한 뒤, 화자는 5연에서 ‘꽃’과 ‘열매’를 대비시켜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은 일시적이요, 찰나에 그치지만, ‘열매’는 궁극적이며 영구적이라며 ‘꽃’ 뒤에 ‘열매’를 맺게 하는 신의 섭리(攝理)를 말한다. 이어 6연에 와서 ‘웃음’과 ‘눈물’을 5연의 ‘꽃’과 ‘열매’에 대칭적 구조를 만들면서 '눈물'의 궁극적 의미는 삶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는 진리를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대립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 속에서 '눈물'은 인간 영혼의 가장 순수한 상태이며 삶의 고귀한 결정체로, '당신(절대자)'의 섭리에 의해 진실과 영원에 이르는 고귀한 가치를 지닌 삶의 '열매'로서의 깊은 의미를 갖는다.
겉으로 드러난 '웃음'이 화려하지만 쉽게 지고 마는 '꽃'의 현상적 아름다움처럼 유한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눈물'은 씨앗을 그 안에 간직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지닌 '열매'처럼 순수하고 진실한 내면적 가치를 지닌 영원한 것이며, 이것이 곧 신의 섭리와 은총이라고 믿고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대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 인간적 삶의 한계이다. 이 한계에 부딪혀 절대적 존재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인간의 영혼을 맑게 씻어 주며, 진정한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남상학)
*1기(초기) - 《김현승 시초》
자연에 대한 주관적 서정과 감각적 인상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사회 정의에 대한 윤리적 관심과 도덕적 열정도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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