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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가을의 기도 / 김현승

by 혜강(惠江) 2020. 2. 20.


<출처 : 네이버블로그 "PUMJIN'>



가을의 기도

                

- 김 현 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문학예술(1956.11) 수록

 

 

이해와 감상

 

 <가을의 기도>문학예술(1956.11)에 발표란 뒤 그의 첫 시집 김현승 시초(1957)에 수록된 신앙시이다. 이 시는 김현승 시인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기도의 자세와 신앙심을 근간으로 쓰인 대표적인 작품이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편 141~142)라는 신앙적 구도와 같은 문맥 속에서 <가을의 기도>는 이해할 수 있다.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진실한 신앙인의 삶을 위한 절대 고독의 추구하기 위해 연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하필이면 사계절 중 가을에는이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자신의 시집 옹호자의 노래자서(自序)에서 가을을 유달리 좋아하는 계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이 시인의 시에는 가을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난히 많고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가 가을을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한 사색형인 데다가, 독실한 신앙인으로 신과 대면하여 기도에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시는 기도(1)> 사랑(2)> 신앙의 궁극에 이르기 위한 절대 고독 추구(3)’의 3단계로 이어지면서 내용이 점층된다.  신앙인이 바른 자세를 갖추고 성숙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 궁극적 경지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절대 고독의 경지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구도의 과정으로 짜여 있다.

 

 1연의 내용은 시인은 가을을 겸허한 반성과 기도의 시간으로 상정하여 신앙인의 바른 자세, 즉 진솔한 기도를 드리겠다고 한다.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이다. ‘낙엽들이 지는 때는 생명이 조략(凋落)하는, 생의 종말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최고로 여겼던 일체의 가치가 일시에 무너지고, 유한한 인간이 신과 대면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만큼은 누구나 엄숙하고 진지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덧씌워졌던 가식(假飾)을 모두 벗어버리고 겸손한 마음이 된다. “모국어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친근하고, 포근하고, 따뜻함이 담긴 진솔한 언어를 비유한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언어라야만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라는 기도는 다소곳한 마음, 즉 무욕(無欲)의 자세, 진솔한 언어로 기도의 시를 쓰겠다는 것이다. ()을 향한 가장 근원적이고 진실한 언어로 기도하겠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2연은 1연에서 밝힌 신과의 진솔한 교제(기도)를 통하여 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겠다는 내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신 앞에서 절대적인 신뢰가 우선되어야 한다.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한 사람은 유일신(唯一神)을 의미하며, 따라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겠다는 것은 그 유일신에 대한 절대 신뢰의 신앙고백이다. 이런 신앙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풍요로운 시간을 가꾸고자 하는 소망이다. ‘가장 아름다운 열매즉 신앙인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위하여 경건한 구도의 시간을 보람 있고 알차게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내적 성숙 단계인 것이 아니겠는가?

 

 3연은 이 시의 시상이 집중되어 있다. 삶의 궁극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절대 고독을 추구하겠다는 소망이다.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신 앞에서 절대 경지를 추구하는 고절(孤節)한 단독자의 실존을 보게 된다. 신 앞에 마주 앉은 실종 사이에는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 그래서 나의 영혼은 더할 나위 없이 외로운 절대 고독이다.

 ‘나의 영혼의 절대적인 고독의 상태가 '마른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도치법이 사용되었다. ‘까마귀'는 관습적으로는 '불길함'을 상징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시련과 혼란을 거쳐 삶의 본질과 대면하고 있는 고독한 존재를 의미한디.

 

 시인은 그동안 많은 날, 여러 과정을 거쳐 구도의 길을 걸어왔다. ‘굽이치는 바다를 건넜다. 이것은 구도의 과정에서 경험해야 하는 고난과 환란, 역경의 과정이었다. ‘백합의 골짜기도 지났다. 여기서 백합은 굽이치는 바다와 상반되는 이미지로 순결한 신앙인이 구도의 과정에서 겪는 영광과 환희로 가득 찬 시기일 수도 있다. 명암이 교차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 다다른 곳이 마른 나뭇가지 위이다. 잎이 다 떨어진 늦가을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의 영혼이 다다른 삶의 마지막 도착점이다.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는 시적 화자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절대 고독의 경지로 화자의 고독한 영혼의 모습이다.

 

  이 도착점에서, 시인은 인간 구원이라는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인식한다. 그동안 닦아온 구도의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며, 그것은 신()의 소관으로 신이 베푸는 은총(恩寵)으로만 가능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영혼은 마른 나뭇가지 위에 앉아 신의 은총을 기다릴 뿐이다. 절대 고독이다.

 

 그러나 이 고독은 절망적인 고독이 아니다. 시인이 말한 대로, "나의 고독은 절망적인 고독은 아니다. (중략) 나의 고독 중에는 구원을 바라며 신()에게 두 팔을 벌리는,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고독도 있다. 아직까지는 나의 시에 있어선 단지 고독을 위한 고독, 절망을 위한 절망이고자 한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김현승 시인은 스스로 신()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길을 성실하게 정진하겠다는 말로 풀이된다

        

 혹자는 김현승의 시의 세계가 릴케(Rainer Maria Rilke)와 흡사하여 그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한다. 실제로 시인 자신이 릴케의 시 <가을날>을 가장 좋아한다고 고백한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두 시인은 사색과 명상을 바탕으로 기도 조의 시를 즐겨 썼다는 점에서도 흡사하다. 그러나 릴케는 범신론적인 사상을 지향하는 데 반하여 김현승 시인은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남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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