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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꽃잎 절구(絶句) / 신석초

by 혜강(惠江) 2020. 2. 19.





꽃잎 절구(絶句)


                       

                             - 신 석 초


꽃잎이여 그대
다토아 피어
비 바람에 뒤설레며
가는 가냘픈 살갗이여.

그대 눈길의
머언 여로(旅路)
하늘과 구름
혼자 그리워
붉어져 가노니

저문 산 길가에 저
뒤둥글지라도
마냥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이여.

                                   - 시문학 11(1972)

 

 

<시어 풀이>

다토아 : 다투어

뒤설레다 : 몹시 들떠서 두근거리다

뒤둥글다 : 마구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구르다. ‘뒹글다뒹굴다의 방언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잠시 피었다 지는 아름다운 꽃을 통하여 생명의 신비와 생명에 대한 감탄과 생의 절정을 읊은 서정시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픈 일이나, 얼마나 단명(短命)하며, 또 얼마나 없어지기 쉬운가!“라고 백설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김진섭의 수필   <백설부>의 한 대목이 연상된다.

 

 

 김진섭의 표현처럼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기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영원하지 못하기에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에서도 그처럼 짧은 순간 동안 존재하는 꽃잎의 아름다움을 인간 세계로 전이시켜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제재는 꽃잎이다. 아름다운 삶의 상징인 꽃잎을 통하여 꽃잎의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1연은 화사하게 다투듯이 피었다가 비 바람’(시련) 속에 지는 꽃잎의 가냘픔을 노래한다. 화자는 꽃잎의 숭고함을 드러내기 위해 대상을 의인화하여 꽃잎을 친근하게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인 그대라는 단어로 호칭했다. 이러헌 표현은 꽃잎을 사람의 살갗으로 표현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꽃잎은 인간의 생으로 촉매되어 가장 아름답고 광채 있는 생명의 본질을 획득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피어나는 꽃잎의 개화를 다토아 피어로 표현했다. 생에 대한 의지와 열정의 모습이다.

 

 2연은 하늘과 구름으로 표현된 영원을 향하여 붉게 물들어가는 꽃잎의 그리움을 그려나가고 있다. 꽃의 일생을 눈길의/ 머언 여로, 바록 길고 긴 인생길이지만 생의 유한성을 유지하면서 그저 눈길로 혼자 그리워의 그리움 때문에 더욱 붉어진다. 이루어지지 않는 간절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하여 붉어져 가는 것이다.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 비록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끊임없이 영원을 동경하는 것이 아닌가. 시각적 표현도 두드러지면서, 이상과 동경에 사는 인간의 고귀한 생명성, 그 생의 절정이 한 꽃잎에 집약된다.

 

 3연에 오면, 꽃잎의 절정과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다. 꽃의 생애가 가냘프고 짧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의 그리움이 다만 그리움만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꽃은 스스로의 삶을 버릴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비록 '저문 산 길가에 져/ 뒤둥글지라도'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의 생명과 그리움을 마냥 붉게 불태운다. ‘저문 산 길가에 져죽음을 연상케 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지만, 이 말은 결국 꽃잎의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는 데 기여하며, 그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비극적 아름다움의 모습이 이여의 호격조사의 활용으로 한층 감동적이다. 이 시는 끝까지 감탄조의 어조로 시적 화자의 정서를 표출해 나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죽음 언젠가 오는 것, 우리는 결국 저문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고고(孤高)하고 깨끗하게 일생을 살고 간 화자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강렬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환한 목숨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는 신석초가 죽기 삼 년 전에 발표한 것이다. 때문에 인생에 대한 그의 동양적 허무사상이 완숙되어 나타난 시로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느껴지는 허무는 절망이 아니라 황홀함까지 느끼게 해 주는 허무이다. 인생의 종착역에서 뒤돌아보면 언제나 짧고 허무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죽음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이라는 노장사상에 힘입어 허무를 극복하고 죽음까지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성 기슭 모시관 옆에 세워진 신석초 시비(詩碑)에 이 시 <꽃잎 단장>이 새겨져 있다. 신석초 탄생 100주년 시비 제막식(2009)에서 성춘복 시인은 신석초 시인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회고했다.

 

선비다움이나 시인다움은 철저하게 세속적 이해를 벗어난 점에서 빼어난 본보기라 나는 생각했다. 세속과는 거리가 먼 듯한 깊숙한 눈에 특유의 회갈색 눈빛, 그리고 더없이 날카롭게 꺾어진 콧등은 사물이나 사리를 대할 때 한 치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는 매부리코로 어쩌면 고고하고 초연하기 이를 데 없는 품이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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