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 시집《별을 쳐다보며》 (1953)
▲이해와 감상
이 시를 읽으면 한적한 시골이 연상되는데, 노천명 시인은 그 풍경 속에 들어가 이름없는 여인으로 살 수 있다면 여왕보다 행복하겠다고 한다. 고독한 시인의 티없이 소박하고 순결한 심상이 감동적이다.
모든 세속의 욕심을 씻고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노천명 시인은 너무나 고독한 삶을 살다간 시인이다. 내성적인 데다 자존심, 고집이 세고 비타협적인 성격을 지녔던 노천명은 흔히 '사슴의 시인'이라 불렸다. 독특한 개성으로 자기만의 목소리를 냈다. 고독하면서도 화려한 이미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풍물시들을 남겼다. 뛰어난 문재와 풍부한 감성으로 자연친화적인 아름다운 시를 썼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험난한 시기를 지나면서 친일 행적과 부역 행위라는 오점을 남겼다. 이 시는 한국전쟁 당시 부역죄로 1950년 10월 20일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문인들의 구명운동으로 사면을 받아 투옥된 지 6개월 만에 출감했다. 당국의 특별 배려로 옥중에서도 시를 쓸 수 있었던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과 자조감을 표현했다. 1953년 펴낸 그의 제3 시집 《별을 쳐다보며》에는 40편이 수록돼있는데 이 중 21편이 옥중시이다. 이 시도 수감 중에 쓴 작품이다.
요지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이름 없는 여인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고, 그 산골 마을에서 살면 외롭지 않고 여왕보다 행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작품의 수미(首尾)에 두고, 그 중간 부분은 산골 마을의 풍광과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시골살이들이다. 먼저 마을의 풍광으로 제시한 것은 ‘부엉이가 울고, 기차가 지나가고, 삽살개가 달을 짓는’ 것이다. 고작 세 가지다. 이에 비하여 화자가 하고 싶어하는 것들은 많다.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1연) /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2연) 등으로세 배 가까이 된다. 시골 마을의 풍광이 좋아서라기보다 시골 마을에 가서 하고 싶어하는 것이 많다.
이것은 필자가 평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시어로 자연친화적인 작품을 즐겨 썼다는 사실 외에 이 작품이 답답한 감옥에서 수감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별빛도 안 보이는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서 삶에 지친 사람이 전원생활을 꿈꾸는 정도가 아니다. 생각과 이념이 다른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혀 살면서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다 영어(囹圄)의 몸이 된 자신을 돌아보니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터전에 원망스럽고, 그래서 내가 활동하던 도시, 지위, 명예 등 모두를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유의 몸이 되면 그리워하던 산골마을에 들아가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펼쳐보고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행복을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가슴을 깎는 고독과 운명적인 자학(自虐)이 여과(濾過)된…” 작품인 것이다. 고뇌 속에 탄생한 것이기에 더욱 절실하다.
여기서 우리는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여류시인 노천명의 굴곡진 삶에 주목한다. 그의 원래 이름은 '기선'이었으나 여섯 살에 홍역을 앓아 사경을 헤맨 뒤 천명(天命)으로 살아났다고 해서 '천명'으로 개명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행각으로 친일문학을 다룰 때 이광수와 더불어 노천명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1951년 한국전쟁 때는 부역 혐의로 수감됐다가 석방되었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1957년 2월 7일 재생불능성 뇌빈혈로 쓰러져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했다. 다소 회복하자 치료비 부담으로 퇴원했다가 넉 달 만에 6월 16일, 46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운명했다.
"눈물어린 얼굴을 돌이키고/ 나는 이곳을 떠나련다/ 개 짖는 마을들아/ 닭이 새벽을 알리는 촌가(村家)들아/ 잘 있거라// 별이 있고/ 하늘이 보이고/ 거기 자유가 닫혀지지 않는 곳이라면-“
시인 노천명의 1951년 작 <고별>의 마지막 대목이다. 이 시구는 노천명의 묘비 대신 무덤 앞에 세워진 시비에 새겨져 있다. 이력이 화려하고, 다재다능했던 엘리트 여인의 삶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씁쓸하다. 시인이 시대에 휘둘려 이러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픈 역사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리 : 남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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