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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이 생명을 / 모윤숙

by 혜강(惠江) 2020. 2. 17.


<출처 : 다음블로그 '솔향기 속으로'>



이 생명을

 

                                         - 모 윤 숙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라시면 나는 가지요.

임이 살라시면 사오리라.
먹을 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더미로 옘집* 채찍 맞으면서도
임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죽음으로 갚을 길 있다면 죽지요.
빈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녀요
내 님의 원이라면 이 생명 아끼오리
이 심장의 온 피를 다 빼어 바치리라 

무엔들 사양하리 무엔들 안 바치리
창백한 수족에 힘 나실 일이라면
파리한 임의 손을 버리고 가다니요
힘 잃은 그 무릎을 버리고 가다니요.

 

 

                                         - 시집 빛나는 지역(1933)



<시어 풀이>  

*옘집 : 여염집의 속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4, 4행으로 이루어지진 자유시다. 조국을 임에 비유하여 개인이 개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듯 조국에 대한 순수 무구(純粹無垢)한 애정을 노래했다.

 

  1연은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즉 차림은 비록 초라하나, 임이 오라고만 하면 나는 달려가겠다. 곧 나는 비록 초라한 존재이이지만 임의 부름에는 기꺼이 응하겠다는 뜻이다.


  2연은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고, 빚더미에 짓눌려도 임이 이 땅에 살라고 하신다면 살겠다. 말하자면 굶주리고 헐벗고 생활고에 시달려도 임의 뜻이라면 물질적인 조건이나 어떤 고난이 와도 참고 견디겠다는 뜻이다.


 3연은 임의 사랑을 무엇으로 갚을까? 죽음으로 갚아진다면 죽기라도 하겠다. 나는 가진 것이 없어, 빈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닌다. 임이 만일 내 생명을 원한다면 생명도 내주겠다. 심장의 피를 뽑아서 바치기도 하겠다.


 4연의 파리한 임의 손이나 힘 잃은 그 무릎은 쇠퇴한 조국의 운명, 또는 조국의 역사적 현실이다. 임의 힘이 될 일이라면 무엇을 사양하지 않고 생명이라도 바치겠다. 수척한 임을 두고 차마 그 곁을 떠날 수야 있으랴. 끝까지 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겠다고 한다.

 

 다분히 화자의 감정을 직설적(直說的)으로 드러낸 이 시의 가락은 소박하고 진솔하여 오히려 호소력이 강하다. 임에 대한 헌신적인 순애(殉愛)의 정신을 어찌 이보다 강력하게 전할 수 있으랴? 거창한 역사적 현실 속에 너무도 가난하고 허약한 조국을 바라보는 이 시대의 인텔리 시인에겐 살을 저미고, 피가 마르는 안타까움과 아픔이었고, 운명처럼 짊어진 순애보(殉愛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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