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에 서서
- 신 석 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 《문장》 (1939) 수록
<시어 풀이>
산삼(山森):산의 숲
부절(不絶)히:끊임없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현실 극복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시인이 즐겨 노래한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현실 의식을 드러낸 신석정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시어를 사용하여 직서적인 어조를 통해 화자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대립적 심상의 두 세계를 대조시켜 주제를 부각시킨다.
이 시의 화자는 현실 극복의 굳은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산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산의 힘차고 굳센 모습을 통해 화자 자기 삶의 태도를 드러내려는 의도이다. 우람하고 의지가 굳은 산 위에 흰 구름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머리 위에는 항상 맑고 밝은 세상, 희망과 이상인 ‘푸른 하늘’이 위치한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산의 숲으로 인식하는 한편, 땅을 디디고 살아가는 두 다리를 지구 위에 굳건하게 뻗어 있는 산맥으로 생각함으로써 자신과 산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래서 산은 곧 화자의 굳센 의지의 형상를 상징한다. 이처럼 화자는 자신을 굳센 존재로서의 산에 비유함으로써 힘든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암울한 현실을 상징하는 ‘저문 들길’에서 하늘의 ‘푸른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과를 거룩하고 기쁜 삶으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어두운 하늘에 높이 떠서 세상을 밝게 비추는 푸른 별은 미래에 대한 이상과 꿈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 역사에서 질곡의 시대였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나의 목가에도 어둡고 슬픈 빛이 젖어 들었다. 어찌 생활이 슬퍼서 좋으랴? 너무나 생활은 슬펐기에 슬퍼서는 안 되겠다는 반어요, 작은 절규로 보아 좋으리라.” 이 말에서 보듯이, 전원적이요 목가적인 시를 즐겨 쓴 신석정 시인도 민족적 현실을 외면하고 이로부터 도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신석정이나 김상용과 같은 시인들을 현실도피로만 몰아간다는 것은 잘못된 평가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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