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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슬픈 구도(構圖) / 신석정

by 혜강(惠江) 2020. 2. 16.




슬픈 구도(構圖)



                                  - 신 석 정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날 지구(地球)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 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오.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드뇨

 

 

                                              - 조광(朝光(1939. 10월호)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이 발표된 1939년은 일제의 수탈이 극도에 달한 시기였다. 막다른 시대적 상황이 목가적인 시인에게도 암울한 절망 속에 빠지게 하였다. 이 시는 조국을 빼앗긴 어두운 시대에 느끼는 외로움과 절망감을 노래한 절규에 가까운 저항시이다.

 

 먼저 제목을 보자. 슬픈 구도(構圖)’인가? 나라를 잃은 백성인 는 이미 온전한 생명을 가진 존재일 수 없다. 따라서, 납작한 평면적 구도속에 갇힌 그림속의 를 객관화시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슬픈 구도(構圖)’는 식민지 지식인의 비극적 상황을 회화적으로 표현했으리라.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슬픈 구도는 외롭고 절망적 상황이다. 이 외로움과 절망의 상황의 정체는 무엇일까. 둘째 연에 그 원인이 엿보인다. 그것은 화자의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차원의 문제이다. 2연의 내용, 즉 화자가 외로운 것은 꽃 한 송이 피어내고 새 한 마리 울어 줄그리고 노루 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지구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모든 교감이 끊어진 공간에 화자 홀로 남겨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의 외로움과 절망감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다.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다. 그런 밤에는 로 상징되는 이상 세계조차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극한의 절망적 상황인 것이다. 그야말로 내일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이다.

 

  이 작품은 비교적 짧고 형태상으로도 단순하다. 그러나 반복과 열거, 점층적 표현을 통해 현실의 절망감을 더욱 심화시켜 표현은 더욱 뚜렷하며 강렬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런 표현 방법은 일제의 억압이 가중되는 시기의 절망을 나타내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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