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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by 혜강(惠江) 2020. 2. 15.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문학2(1934. 2) 수록



<시어 풀이>

: 남쪽은 자연을 지향하는 방향, 곧 그가 지향하고 있는 절대적인 공간

한참 갈이 : 한참 갈 만한 농토

구름 : 헛된 명리, 속세의 유혹

꼬인다 : 유혹하다.

왜 사냐건 : 왜 사나고 물으면

 

 

이해와 감상

 

 관조적 경향의 순수 서정시를 주로 발표한 김상용의 대표시이다. 전원생활을 제재로 하여 대 화투의 친근하고 소박한 어조로 평화로운 전원에서의 삶에 대한 소망을 함축적으로 노래했다. '-'라는 예사 높임의 활용 어미와 , , 의 각운(脚韻)을 통한 운율감을 형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 시의 전개를 살펴보면, 1연은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려는 화자의 삶의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도시의 인위적(人爲的)인 생활과 허영을 떠나 전원(田園)을 찾아가, 남쪽으로 창을 낸 조그만 집을 짓고, 한참은 경작할 수 있는 분수에 알맞은 땅을 장만하여 농사짓고 살겠다고 한다. 2연은 다시 화려한 도시 생활로 돌아가자고 유혹하는 듯이 구름이 저 산을 넘으며 손짓을 해도 마음 변하지 않고 새들의 노래를 값을 내지 않고 실컷 즐기며 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 밭에 강냉이가 익거든 먹으러 오라며 회화체의 친근한 어투로 낙천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삶의 여유를 드러낸다.


  그리고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표현한 마지막 연은 이 시의 가장 함축적인 부분으로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잔잔한 웃음으로 답하는 모습은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이 스스로 만족하면서 산다는 표현으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초월(超越)과 달관(達觀)의 경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시적 표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1930년대 중반 유행처럼 번지던 서구적 취향의 모더니즘 시 세계와는 상반된, 다분히 한국적이면서 동양적 생활 철학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참다운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참고>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표현 : 이백(李白)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의 둘째 구절 '笑而不答心自閑'과 상통하는 것으로, 이 시는 삶의 허무 의식에서 벗어나 자연과 합일되어 무위의 상태에 다다른 시인의 인생관 내지 삶에 대한 태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   


"문여하의서벽산 소이부답심자한" (問余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어인 일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나에게 묻기에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절로 한가롭다)

 

 

작자 김상용(金尙鎔, 1902~1951)

 

 경기도 연천 출생. 시조시인 김오남(金午男)이 여동생이다. 보성고등보통학교, 일본 릿쿄[立敎]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0년 동아일보에 시 무상 無常<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를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30 년대 우리나라의 문단 전반에 흐르고 있던 순수 서정시 운동과 맥을 함께 한 그의 시는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읊었던 청록파 시인들과는 다르다. 전원적 삶을 대상으로 '''자연'의 화해, 자연의 품에 안긴 삶을 지향했다. 대표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는 자연 속에 묻혀 살면서 그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경지를 보여주었다. 신석정·김동명과 함께 3'전원파' 시인으로 불렸다.

 

 1939년 첫시집 망향(望鄕)을 펴냈고, 죽고 난 뒤 김상용전집(1983) 남으로 창을 내겠소(1986) 등이 나왔다. 인생과 사회에 대한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을 보여준 수필집 무하선생 방랑기(1950)를 펴냈고, 그밖에 E. A. 포의 애너벨 리, J. 키츠의 희랍고옹부 希臘古甕賦등을 번역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와 코리아 타임스의 주필을 맡아보았으며,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가 1951년에 식중독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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