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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 명상자료

(명상) 찬란하게 비상할 수 있는 날을 주십시오(16~20)

by 혜강(惠江) 2020. 1. 31.




명상노트

 

찬란하게 비상할 수 있는 날을 주십시오(16~20)

 

                                                                                  남상학


         16

요즘처럼 감각이 무디어진 때는 없었습니다.
웬만한 자연의 변화나 사회 문제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내 영적 심령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둔감(鈍感)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무디어 못 쓰게 된 쇠붙이는 벼려야만 다시 쓸 수 있듯이,

달구어진 시련의 풀무 속이나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구워

쓸모 있는 도구로 거듭나기를 소원합니다.

         17

오늘 다시 바다에 가 보았습니다.
바다는 모든 허물을 덮고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맞아주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얼마 동안 잊었다가 한참 만에 찾아가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우리 모두의 고향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몸으로 찾아갈 때 두 팔 벌려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바다는 내게 출렁이는 영원한 쉼터, 당신의 마음입니다.

         18

바다 앞에 서면 나는 으례 한 마리 갈매기가 됩니다.
저녁 노을 한 점 찍어다가 바위 틈에 둥지 틀고, 먼 바다 끝을 조망하며 영원을 기웃거리는 습성으로 살아갑니다.
온종일 그리운 소식에 가슴 조이며 날개를 퍼득이며 오르내리다가 노을이 내리면 바위 끝 꼭대기에 다시 날개를 접는 외로운 새. 고독을 훌훌 털고 영원을 향하여 힘차게 날아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요?

         19

높고 투명한 가을 하늘, 그 아래 우람한 산이 오늘은 선명하게 보입니다.
시야에는 수직과 수평으로 텅 빈 공간이 들어 옵니다.
이것은 분명 계절이 주는 가을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력은 채우기 위함보다 비우기 위하여 촛점이 맞추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하신 말씀이 진리이듯이, 빈 그릇일 때의 넉넉함, 부요함을 위하여 이 가을에는 무한히 확대되는 공간 속에 빈 그릇으로 남아 있게 해 주십시오.

         20

풍요의 계절에 나는 나 자신을 잘 익은 열매로 당신께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쭉정이 아닌 알곡이 되어야 함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불충한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내적 충실을 이루지 못한 삶, 성실한 농부이기를 저버린 나의 무능함으로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성찰의 계절을 부족함 뉘우치는 겸허한 슬픔으로 보내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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